다시 아침이슬처럼…
넉살 좋고 목소리 곱고 노래 잘하는 아줌마, 양희은과 함께

당신도 CD음반을 살 때가 있는가.

10대 또는 20대가 아니라면, 한달에 한번? 1년에 한번?

먹고살기 바빠 삶의 여유와 문화를 잊은 그대를 향해 ‘아줌마’는 가끔 푸념을 털어놓는다. “나에게 CD 1만장이 팔리는 시대는 없는가.”

오늘의 게스트는 아줌마(더 정겨운 표현으로는 ‘아름마’가 있다). 넉살좋고 목소리 곱고 노래에 탁월한 아줌마. 3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추억 한 귀퉁이에 고여 있을 아줌마. 김규항과 김어준은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양아치’라고 칭하며 껄껄 웃었다. 양희은(48). 문화방송 <여성시대> 진행자로 맹활약중이기도 한 그가 오늘 함께 했다.

내년은 <아침이슬> 30돌

김규항 요즘 바쁘십니까?

양희은 음… 제가 바쁜 거는 밖으로 안 드러나요. 71년에 <아침이슬>이 처음 나왔거든요. 내년이 가수활동 30돌 되는 해이니까 기념공연 준비하고 있어요. 우리 밴드들하고 연습하죠. 클래식 기타, 클라리넷, 피리, 어쿠스틱 피아노… 전자악기로 음을 증폭시킬 일이 없으니까 이웃한테 책잡힐 일도 없고요. 그 다음엔 <여성시대>해야 하고… 또 스테이지 할 만한 일 있으면 하고.

김어준 저는 한번 뵀어요.

양희은 언제?

김어준 94년인가 기독교방송에서 쓱 지나가면서. (웃음)

양희은 대단한 기억력이네. (웃음) 나는 옛날에 쓱 지나간 사람이 아니라 마침표 토씨까지 기억했어요. 그러다가 암에 걸리더라구요. (웃음) 제가 사학을 전공했던 이유는 그 공부가 별로 노력 안해도 인물과 연대가 그냥 들어오기 때문이었어요. 남보다 굉장히 쉬웠어요. 그런데 수술 두번 하고 나니까 완전히 조두, 상조두가 되더라구요. 기억력이나 이런 게 완전히 흐려졌어요. 조두… 석두…. (웃음)

김어준 선생님도 참 기억력이 좋으시다는 걸 느꼈는데… 책 쓰신 걸 봤거든요. 제목이 뭐더라….

양희은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김어준 한권밖에 안 쓰셨죠?

양희은 그럼요. 내 주제에…. (웃음)

김어준 김민기씨 시절부터 회고하면서 죽 내려가는데 작고 세세한 부분까지 너무 정확하게 기억하시더라구요. 뭐 어디 참조할 것도 없었을 텐데.

양희은 참조는 뭐. 제가 현장에 있었는데.

김어준 태권도도 하셨죠.

양희은 네, 미국에 살 때 했어요.

김어준 목소리가 태권도에 딱 어울릴 것 같은데. (웃음)

양희은 되게 웃겼어요. 미국 사람들은 덩치가 100kg 이상 나가도 기합이란 걸 모르죠. 곰만한 사람들이 대련할 때 “빠샤빠샤” 하는데 진짜 웃겼어요. (웃음) 나더러 기합을 질러보라 해서 “아으”하고 큰소리를 쳤더니 다들 깜짝 놀라는 거라. 웬 뚱뚱한 아줌마가 오더니 소리를 마구마구 질러대니까.

김어준 형은 그 책 안 읽어봤죠?

김규항 어. 어준이가 책 많이 보는구나. (웃음)

김어준 내가 좀 지식인이잖아….( 웃음)

양희은 별의별 잡다한 것까지 보는구나. (웃음)

김어준 김민기씨에 대한 애정도 상당하시던데.

양희은 저의 우상이었죠. 20대의 우상….

김어준 저도 어릴 적 김민기씨 노래 처음 듣고 감동했죠.

양희은 기독교방송 심야프로에서 처음으로 <친구>란 노래를 들었죠. 기타도 압권이고 노래도 압권이었어요. 창식이 형이 나중에 그렇게 얘기하대요. “민기가 노래를 했더라면 자기는 없었다”고. 송창식 선배가 나한테 대놓고 그래요.

H.O.T를 보면서 드는 생각

김어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중에 하나가 송창식씨입니다. 사실 어머님이 송창식씨 팬이신데, 텔레비전에 나오기만 했다하면 우리 아버지랑 싸우시죠. (웃음)

양희은 질투 때문에?

김어준 아버지는 “저 뭐 딴따라가 좋다고… 저 장발을” 그러시고.

김규항 아버진 뭐가 잘 나셨는데. (웃음)

김어준 우리 아부진 머리 짧어. (웃음)

양희은 아버지 눈에는 차림이나 용모가 맘에 안 들었을 거예요.

김어준 당시에는 수용이 불가능했죠. 그런데 왜 요즘 안 나오시죠?

양희은 창식이 형은요, 기상시간 땜에 못 나와요. 모든 텔레비전 녹화 스텐바이가 낮이잖아요. 근데 창식이 형은 기상하고 운동하고 발성하고, 그리고 세상에 나오는 시간들이 딱 짜여 있어요. 그 시간이 안 맞으면 못하는 거죠.

김어준 기상시간이 언제에요?

양희은 오후 4시에요. 3시일 때도 있는데, 그리고 나서 운동하는데 두 시간, 목 풀고 그러고 나오면 아홉시 반이나 열시죠. 근데 텔레비전은 그렇게 밤에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웃음) 제가 알기론 그래요.

김어준 어릴 때 <아침이슬>을 처음 들었을 때가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아니 뭐 이런 노래가 다 있나” 그랬죠.

양희은 그 음반들은 지금 들어도 별로 흔들리지 않아요. 가장 단순한 편성으로 돼 있고. 기타 두개에 목소리… 가끔씩 현이 깔려주고. 그리고 모든 게 동시녹음이었어요. 예를 들어 <백구>가 6분 반짜린데, 끝에 가서 누가 삑 하면 다들 쳐죽일 듯이…. (웃음) 그 긴장은 말로 못해요. 그때 현이나 이런 걸 맡아주셨던 분들은 이미 미8군에서 내공이 엄청 쌓인 분들이셨거든요. ‘연주인 누구누구’ 그런 개념이 아니라 대사부들이셨죠. 거기서 한번 ‘삑사리’를 한번 냈다 그러면 집중사격 맞았어요.

김어준 요새 H.O.T나 이런 친구들 보면 무슨 생각 드세요?

양희은 저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고 그뒤의 프로덕션에 대해서는…. (웃음) 문화에 장사가 개입된 어쩔 수 없는 시대이죠. 거부할 수 없지만 문화가 장삿속으로 덤벼들기 시작하면 참으로 처참한 것이고요. 그 사람들의 노래나 노래말의 뼈대가 튼튼하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렇겠죠.

김어준 전문용어로 표절이라고 하죠.

양희은 자기네는 샘플링이라고도 하죠. 요새는 표절도 아름답게 잘하면 “이런 표절 누가 할 수 있어. 나와봐!” 그러죠. 어차피 음반시장에서 구매력 있는 집단은 초·중·고교학생들이고 그 친구들 입맛에 맞는 음악을 생산하는 것이고.

김어준 저는 30∼40대층 스스로도 욕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 자기가 들을 음악 없다고 욕은 하면서 직접 음반 안 사거든요. 자기들이 좋아할 음악이 자랄 토양 자체를 키워주지 않으면서 욕만 하면 뭐해. 전 양희은씨나 송창식·김민기씨 노래면 일단 사는데.

양희은 30대시죠? 40대는 절대 안 사요.

김어준 30대도 사실 안 삽니다. (웃음)

김규항 우리나라에서 30대 중반 이후의 삶이라는 게 문화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음반을 산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없어요. 근데 양희은 선생님 판은 어느 정도나 팔리나요?

“<여성시대>, 엄청 찡하게 배워요”

(사진/따뜻한 봄날 오후, 문화방송 앞에서 세 사람이 함께 했다. <여성시대> 녹 화가 끝난 뒤 1시간 동안)

양희은 보통 시집이 팔리는 정도 같아요. 5천에서 8천. 보통 CD 1만장이면 카세트가 2만개 가거든요. 1 대 2에요. 저는 구매층의 나이들이 많기 때문에 카세트 별로 안 듣거든요. CD가 한 10개 나가면 카세트가 13∼14밖에 안 가요. 그래서 제가 콘서트 할 때 그런 말을 해요. 제 소원이 세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CD가 1만장 팔리는 거다. 그런 얘기를 하면 객석이 썰렁해요. 저 여자가 거짓말 하는 게 아닌가. 설마 1만장이 안 나갈려구.

김어준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양희은 후배들은 “이제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말려요. 동정 유발해서, 불쌍하게 보여서 판을 사달라는 거 아니냐면서요. 나는 그게 아니고, 통기타 가수들의 기본정신이 진실을 내놔야 하는 거라고 할 때, 그게 현실이란 걸 얘기하자는 거라고 대답하죠. 뭐 그렇게 불쌍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이거야. “그렇다.”

김어준 그 층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거든요.

양희은 콘서트는 무섭게 보러와요. 1년에 한번은 보러오세요.

김어준 그 시절 음악도 다시 듣고 싶고, 보고도 싶은데 판을 안 사는 거죠. 판을 안 사니까 시장지배력이 없어지고 만날 찬밥 신세죠. 자기들이 누릴 문화를 자기들이 지키지 못한 셈인데, 천박한 문화라 욕하는 미국만 해도 로큰롤을 듣고 자란 세대는 여전히 자기들만의 문화영역에서 로큰롤시장을 지키는데, 그러니까 자신들 세대의 문화와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데 우리는 만날 10대 시장만 붙잡고 있는 거죠. 씨바! (웃음)

양희은 문화라는 것이 사람의 정신생명이라고 한다면… 하다못해 남대문 시장 지나가다가 조그마한 자라나 거북 새끼를 사서 키우더라도 때맞춰 먹이 줘야죠, 돌들도 바락바락 주물러서 씻어줘야 하거든요. 그것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이 그게 잘 자라나고 커지길 바랄 수가 없죠. 다들 먹고사느라 바빠 5천원짜리 카세트테이프를 하나 못 산대니…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예요.

김규항 선생님이 하고 계신 <여성시대>는 알려진 대로 의식있는 PD들이 맡고 있죠. 지식인들이 하는 것처럼 어려운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대중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해보니까 어떠십니까.

양희은 엄청난 힘을 느껴요. 나는 그래도 우리나라가 버틸 수 있는 힘은 바로 <여성시대>에 편지를 보내주는 사람들의… 아주 숫자적으로 적거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양심과 도리, 경우를 지키는 사람들. 이거라고 생각해요. 참으로….

김규항 보람을 느끼시겠어요.

양희은 하… 보람이라고 표현을 못하구요. 배우죠. 엄청 찡하게 배워요. 그리고 편지를 보면 찍혀서 오는 편지는 거의 없어요. 컴퓨터 자판으로 친 편지가 30%라면 70%는 다 육필이에요. 달력 뒤편 같은 데다가 볼펜으로 꾹꾹 눌러서 편지를 보내시는 분들도 있고.

김어준 서갑숙씨 이야기가 한창 떠돌 때 논평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딱히 부정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이지도 않았는데. 그게 선생님의 생각이었는지, 작가의 생각이었는지…. 사실 선생님의 삶의 괘적을 생각하면 서갑숙씨를 지지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라 놀랐거든요.

김규항 실망했어? (웃음)

양희은 저는 먼저 그게 제일 먼저 떠오르데요. 딸! 그 사람의 딸들 생각이 났어요. 나는 식구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다음에 사회적인 파장을 보는 거고.

김어준 딸 있으세요?

양희은 아니 없어요. 제가 딸이에요, 우리 엄마의.

김어준 그럼 아들….

양희은 아니 없어요. 아이가 없지요. 개가 있습니다, 개! (웃음) 개 두 마리를 기르고 있어요.

왜 나는 눈을 뜨고 노래부르는가

김규항 선생님의 노래는 추억의 음악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좋은 음악으로서 살아 있는데… 사회적인 노래도 많고요. 근데 부정확한 기억이긴 하지만 어디에선가 “노래하면서 그런 걸 의식한 게 아니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양희은 그렇죠. 그걸 만든 김민기씨도 의식 안했죠. 그건 서정 그 자체였지, 메시지가 아니었어요.

김규항 메시지는 해석 과정에서 만들어졌군요. 지식인들은 언제나 실체보다는 해석에 관심이 많죠. (웃음)

양희은 그 당시 20대들이 사회적으로 분출할 만한 카운터포인트가 없었다고 할까. 그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연대를 느낀 거죠. 그러니까 그 노래의 전설은 금지시킨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예요. 내가 만약 그때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었다면 더 교활하게 금지를 안시켰을 같아요. 풀어놔버렸을 것 같거든요.

김어준 군바리의 특징입니다. 단순무식한 거. (웃음)

양희은 당시에 사실 김지하 선배 밑에서 일들을 많이 했던 70학번, 69학번, 68학번 선배와 동년배들이 많이 달려 들어갔거든요. 근데 나는 명동의 ‘오비스캐빈’에서 노래 품을 팔았어요. “나는 썩어 문드러지게 이런 걸 팔아먹는구나”하는 생각도 들면서 짐이 참 무거웠죠. 근데 어느 날 양심의 가책 같은 걸 선선히 넘었어요. 나는 왜 대한민국 서울의 명동에서 제일 화려하고 음식값도 비싼 술집의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나… 노래가 날마다 좋은 건 아니거든요. 어떤 때는 타성에 젖어서 나오고, 어떤 때는 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닭살이 돋는 경우도 있고…. 구로공단에서 내 또래의 여공들이 일하는거나 내가 일하는거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규항 노동이었다는 얘기군요.

양희은 그 현장에서 그렇게 몸으로 때웠지요. 그곳에서 놀던 친구들의 공통분모는 대부분 막내아들이거나 S대 다니면서 등록금이나 밥 걱정을 안해도 대충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저는 아니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죠. 홀어머니에 두 동생….

김규항 선생님은 노래로 생활을 해결하셨죠.

양희은 <아침이슬>을 불렀을 때가 만으로 열여덟이었는데, 그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어요. 구로공단 아니면 관광기생이었어요. 아르바이트 선택의 폭이라는 게 좁았죠. 패스트푸드도 없었고.

김어준 아까 머리털이 선다고 말씀하셨는데, 자기 노래에 도취되어서 그런가요?

양희은 언젠가 창식이 형한테 내 고민을 얘기한 적이 있어요. “나는 왜 노래를 할 때 또다른 내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모든 걸 보고 있지? 왜 나는 눈을 감고 취해서 못 부르는 거야? 눈을 감고 부르는 게 제대로 부르는 걸까, 아니면 눈을 똑바로 뜨고 부르는 거여야 되나.” 나는 눈을 감고 노래를 안해요. 이동원씨나 해바라기의 이주호씨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고 노래하죠. 나는 눈을 뜨고 노랠해요. 그러면서 “왜 나는 노래에 빠져 취하질 못하는 걸까, 이건 오버다, 이건 너무 차갑다, 밥맛이다, 마음이 실려 있질 않다”고 늘 그래요. 나의 성향이 그래요.

김규항 그런 게 이른바 브레이트의 소격효과인데. (웃음) 자의식이 강한 선생님의 성품과도 관계가 있겠죠.

양희은 노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노래할 때 눈 맞추고 얘길해야죠. 도취돼서는 안 돼요. 그냥 독백처럼 하는 건 지집 목간통에서도 할 수 있는 거고.

“마음은 다 어디 가 있는가요”

김규항 선생님은 경기여고 나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연배에 경기여고 나온 분들은 대개 귀족 부인들인데…. 대학 시절이나 고교 시절에는 다들 정열과 순수가 있었을 텐데요. 지금은 얼마나 교류가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양희은 한달에 한번씩….

김규항 대화를 해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양희은 동문들 중에서 나는 깍두기예요. 학교 때 대의원이었던 애들은 부모가 보내주는 돈으로 70년대에 유학갔다가 돌아와 누구보다 일찍 대학교수가 됐고… 또 그렇지 않고 평범한 엄마로 아이를 기르고 어렵사리 집을 마련하는 동문들도 있죠. 자기 일을 갖고 사는 친구들과 전업주부로서 애들에게 모든 걸 거는 친구들. 근데 저는 그냥 중간이에요. 딴따라라는 건 그래요. 그래서 사실은 이쪽도 잘 알고 저쪽도 잘 알고….

왜 막말로 그런 거 있죠. “얘, 학교 때 반장이 지금도 반장이니?” 남편이 회장·사장인 애들과, 남편이 월급쟁이나 학자인 애들 사이에 후원금액 규모가 틀려지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 맺혀 있던 아이들이 “사는 데도 반장이니?” 하면서 쏘아붙이는 거죠. 근데 제가 뭐라고 얘기하면 친구들은 아무 말도 못해요. 내가 학교 때 별명이 ‘여자 구봉서’였거든요. (웃음) 아무튼 초등학교 때부터 엄청 웃겼어요. 친구들이 “앞으로 나가봐” “노래해 봐” “웃겨봐” 하면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근데 처음 노래가 <아침이슬> <새노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으니 굉장히 가냘픈 소녀가장처럼 돼버렸죠.

김규항 어준이는 고등학교 때 별명이 배삼룡이었습니다. (웃음) 확인은 안 된 얘깁니다. (웃음)

양희은 그런데 그 토대가 굉장히 강해요. 사실은 나 재수할 때 처음으로 단상이 아닌 구석자리에서… 대성학원의 후미진 교실 교단에서 누군가 까부는 걸 보는데… (웃음) 그게 아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교단에서 웃기는 걸 보거나 들은 최초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김규항 아니 선배시네….

김어준 형도 대성학원? 나도 대성학원! 이거 빼야겠다. (웃음)

김규항 요즘 세션맨들이 테크닉은 예전에 비해 발전했는데 아우라는 오히려 적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옛날 악사들하고 지금 악사들하고 비교를 좀….

양희은 맞아요. 마음이 실리지 않죠. 너무 일을 많이 하기도 하고…. 마음이 실리는 것만큼 귀한 게 없어요. 기술이 문제가 아니죠. 어떤 사람의 경우엔 음정·박자 다 형편없는데, 노래를 들으면 퍽퍽 때리는 경우가 있다고요. 그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기 마음이 실려서 그래요. 요즘 그런 걸 듣기 참 힘들죠. 귀해요. 마음은 다 없어요. 마음은 다 어디 있는 거야?

김규항 요즘 젊은 가수들 중 마음이 실린 가수가 있습니까?

양희은 누군지 이름도 모르겠네. 이상하게 중국노래 부르는… 맞아요. 이수영! 이상은도 괜찮아요. 마음이 실리고 겉멋이 안 들렸죠. 겉멋은 쓸데없거든요. 노래를 부르는 이나 연주하는 이나 다 마찬가지예요. 결국 옷을 싹 벗기고 났을 때 골격이 탄탄한가. 뼈대가 튼튼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옷 벗겨놓으면 아무것도 없는 가수들이 있죠. 이를테면 뿌리 같은 거죠. (김어준을 가리키며) 벗어봐! (웃음)

판아 팔려라? 그냥 냅둬!

김어준 저는 조직·이념 이런 시대는 가고 있고 그 자리를 개인과 캐릭터가 대체할 거라고 봐요. 양 선생님은 강한 캐릭터의 개인이신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양 선생님의 시대가 다시 온다고 봐야겠죠.

양희은 시대가 다시 온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김어준 판이 많이 팔린다는 거죠 뭐. (웃음)

양희은 안 팔아도 좋아. 계속 하겠어요. 어차피 판 팔리는 건 관건이 아니에요. 숫자로는 게임 안해. 질로 승부해야지.

김규항 어준아, 너하고는 가치관이 달라. (웃음) 아까 노래가 말이라고 하셨잖아요. 관객하고 대화를 한다는 뜻일 텐데 그렇다면 앞으로 노래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십니까.

양희은 진부한 사랑타령 말고도 얼마나 시선을 돌려야 하나. 아름다운 자연, 또는 늙어가는 것에 대해서… 계절에 대해서… 또는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아줌마에 대해서… 또는 돌아오고 싶어도 못 돌아오는 동포들에 대해서.

김어준 근데 요샌 왜 음반을 안 내시죠?

양희은 저처럼 매해 음반 내는 가수 봤어요? 모르고 있잖아. 1997 <김민기 헌정>, 1991년 아침이슬 20주년 기념으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해서>, 1995년 내 나이 마흔살에는 <내 나이 마흔살에는>은 요새 FM에서 들려요. 사실 <한계령>도 5년 지나서 알려졌거든요. 그때 <한계령>했을 때 음반회사 사장한테 야단맞았어요. “야, 거 팔릴 노래를 해라”고.

김어준 대중음악 역사가 꽤 오래됐는데, 양 선생님 같은 목소리가 다시 안 나오잖아요. 요즘 가수들은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얼굴을 봐야 알죠.

김규항 니가 둔해서 그런 거야. (웃음) 그걸 소구하는 10대들은 다 알아봐. 하여튼 양 선생님이나 송창식, 김민기씨 같은 가수들은 세대를 뛰어넘는 고유성을 갖는 인간문화재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어준아, 오늘의 결론.

김어준 판아 팔려라! (웃음)

양희은 에이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더럽고 치사하다. (웃음) 그냥 냅둬! 홍보의 물결 속에 거꾸로 갈테니까.

김규항 선생님, 어준이는 우리와는 가치관이 다른 놈입니다. (웃음)

양희은 사람 만나서 어떻게 결론이 있어. 저 여잔 양아치다? (웃음) 결론을 꼭 낼려고 하지 마세요.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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