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교도소 짓고 싶어요”
도둑잡는 회사 전문위원으로 ‘전향’한 대도 조세형의 생각

(사진/‘정통 절도범’ 출신 조세형. 그는 요즘 아들 필립을 낳고 꿈결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감옥통?

출소한 지 1년3개월이 지났음에도, 그는 앉자마자 교도소를 화제로 삼았다. 우리나라 교도행정은 법 상식이 전혀 안 통하는 집단이라는 것… 이렇게 말하면 교정 관계자들이 펄쩍 뛸 거라는 것… 그러나 그 사람들을 묵사발 만들 수 있는 논리와 경험이 있다는 것 등등…. 그는 20여분간 교도소의 구조와 직제까지 자세히 설명하며 교도행정을 씹었다.

하긴 그렇다. 52년을 사는 동안 31년을 감방에서 썩지 않았는가. 그는 장기수였다. 그럼 양심수였나? 그렇게 볼 수는 없다. 그 역시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지는 않았다. 조세형. 그의 이름엔 늘 ‘대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품위있게 다시 이름 붙이자면 ‘정통 절도범’이라 할 수 있을까.

에스원 취직, 후배들이 항의한다는데…

김규항 실례지만 전과 몇범이시죠?

조세형 실형전과가 9범이고, 실제로 징역 산 거는 소년범 때 포함해서 한 20여차례 되나? (웃음)

김규항 선생님께선 소년 시절 염천교 걸인생활부터 시작해서 절도행각을 시작했고, 지금은 삼성그룹의 보안경비회사 에스원에 계시죠?

조세형 에스원 범죄예방연구소 전문위원입니다.

김규항 대단히 실례의 말씀이지만 현재 절도 일을 하지 않고도 생활이 되시죠?

조세형 충분히 하죠.

김규항 그 전에는 그럴 필요가 있어서 하셨던 거구요.

조세형 그렇죠. 허가만 나면 괜찮은 직업이었지.(웃음)

김규항 선생님의 비결을 도둑잡는 사람들한테 전수하면 ‘후배’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것 아닙니까? 일종의 전향인데요.(웃음)

조세형 그러잖아도 지금 교도소에 있는 후배들이 항의를 많이 해.(폭소) 하필이면, 해도 그런 걸 하느냐고 말이죠.

그런데 그가 오늘의 게스트로 초청된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잇따라 터진 광주지법과 서산지청에서의 피의자 탈주사건 때문인가. 탈옥자 출신 보안경비회사 전문위원답게, 탈주사건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멋있게 얘기해 줄 거라는 기대라도 한 것일까. 아니다. 단순하다. 탈주사건이 터지면서 문득 그가 생각났을 뿐이다. 쉰살에 들어 처음으로 애기 아빠도 됐다는데, 그의 사는 얘기를 듣고 싶기도 했다.

조세형 이런 게 있어. 내가 우리회사 배동만 대표한테도 꼭 이런 얘길 해. 범죄가 발생했을 때 쫓아가는 건 대증처방에 불과하다… 아직도 교도소에서 범죄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들을 위한 교화작업에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김어준 어쨌든 그럼 그 에스원에 가신 게, 범죄수법을 다 까발려서 거기에 대처하도록 하는 노릇 때문만은 아니군요.

조세형 그렇죠. 하지만 비요원들 교육도 일주일에 한번은 시켜. 비트카라고 있지. 패트롤 같은 출동차량, 그걸 비트카라고 하는데, 그 출동요원들을 비요원들이라고 해.

김규항 재소자들의 재교육과 복지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조세형 제가 주장하는 건 이런 거예요. 사회에 공헌한다는 차원에서 민영화 교도소를 만들자는 거죠. 최근 관련 법률도 통과됐으니까. 우리나라 교정행정이 그 모양이니까 모범을 하나 만들어보자는 거죠. 전과자들 출소하면 이들이 사회적응하도록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술을 가르쳐주는 시스템도 만들 생각이고.

김규항 근데, 공부를 어디까지 하셨습니까?

조세형 무학이지.

김어준 초등학교도 졸업을 안….

조세형 입학도 안했지.

김규항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면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한 분하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조세형 무학하고 무식하고 다르거든요.(웃음) 교도소에서 읽은 책들이 8천권이 넘어요. 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책 많이 보면 의식이 깨게 되고 그런 거죠.

“불행한 시대, 쓰리쿠션의 희생양”

(사진/대한민국 교도소는 유독 성역이다. 기자들에게만이라도 개방해야 한다는 게 조세형씨의 생각이다)

앞에서 생략했지만, 그가 교도행정에 관해 갈파했던 긴 이야기들을 잠시 짧게 요약해보자. 핵심은 “교도소를 개방하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아니다. 기자들에게 개방하라는 주장이다. 철저한 접근불가지역, 성역으로서의 교도소를 부수라는 것이다. 그러면 교도소가 확 달라질 거라는 게 그의 확신이다. 그는 이와 함께 양심수들이 교도소 민주화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불만을 표시했다. 잡범들의 처우에도 신경을 써달라면서, 그는 행형법 6조 얘기를 꺼냈다.

김규항 국가보안법 제7조는 잘 아는데 행형법 6조는 잘…. (웃음)

조세형 행형법 제6조에 보면 수용자가 그 처우에 대해 불복이 있을 때 법무부 장관에게 서면으로 청원할 수 있게 돼 있어요. 수용자의 청원권인데… 한마디로 재소자를 위한 유일한 권리장전이라 할 수 있지. 근데 완전히 사문화돼버렸어요. 근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게 청원을 하려면 교도소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라. 교도소장이 나를 이렇게 부당하게 해가지고 청원을 하려는데 교도소장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야. (웃음) 강도한테 당해서 강도를 고발하려는데 강도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그래서 내가 출소 이후 이걸 굉장히 많이 떠들어댔거든. 결국 빛 봤어요.

김규항 지금은 교도소장 안 거치고….

조세형 신고제로 바뀌었죠. 근데 안 돼. 교도소가 성역화돼 있는데 뭐. 누가 알거야.

김규항 이야기를 좀 돌려보죠. 선생님께서 ‘대도’로 불리우는 이유는 일단 고관대작집만 터는 등 가장 스케일이 컸고요. (웃음) 그게 권력 핵심부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괘씸죄로 오랜 세월 고통을 많이 당하셨는데 원한은 없으십니까?

조세형 당시 시대가 정치적으로 불행했던 거예요. 기자들이 바로 권력을 비판 못하니까 도둑놈 하나 쿠션으로 이용해가지고 쓰리쿠션 때린 거지요. 대도 조세형이 누구 집에 가서 물방울 다이어 훔쳤대더라… 도둑놈 빙자해 갖고 그 사람 도덕성을 사정없이 후려칠 수 있었거든. 결국 나는 그 당시 억눌린 양심있는 사람들이 고소하게 생각하는 거리를 제공하는 바람에 괘씸죄에 걸려가지고… 청송교도소 가서 호되게…. (웃음)

김규항 선생님께서 쿠션으로 사용됐다는 말에 동감을 합니다. 그럴려면 여느 도둑하고는 달라야 하는데… 듣기로는 선생님의 5대 원칙이 있다더군요.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가난한 집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등등….

조세형 사실 3원칙이에요. 그 범죄원칙이 뭐였나면….

김어준 직업윤리? 업무수칙? (웃음)

조세형 첫째는 반인륜 범죄, 사람을 해치는 범죄는 해선 안 된다. 실례로 내가 재미삼아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고관대작집들 안방 금고에서 한창 보석하고 달러뭉치들을 집어넣다 보면 집주인들과 부딪치는 상황이 간혹 생긴다고. 근데 사내들은 겁이 안나. 내가 이래뵈도 격투기에 상당히 자신있는 사람이고….

조세형은 선천적 페미니스트?

김어준 그렇게 보입니다. (웃음)

조세형 사내들은 겁이 많아. 우선 생명 지키는 게 재산 지키는 것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김규항 여자들은 막 붙들고 늘어집니까? (웃음)

조세형 사내들이 “당신 뭐요?”하면 “야 임마, 보면 모르냐? 도선생 아이가…” 그러지. 그럼 도망가버리는데, 여자들이 문제라. (웃음) “뭐예요? 남의 집에 들어와서…” 그러면서 쫓아와서 잡아버려. 남자들은 도망가는데, 여자가 잡아버리면 환장해. (웃음) 한대 때려버리면 기절해 버릴 텐데… 근데 난 선천적 페미니스트거든. (폭소) 여자를 못 때립니다. 그래서 입을 콱 움켜쥐고 안아줘. 그럼 안정이 돼. (웃음) 그리고 타이르거든. “아주머니 나는 강도도 아니고… 돈만 가져가는 사람인데 형편이 이렇게 됐으니까 내가 물건 다 놓고 조용히 갈테니 흥분을 가라앉히시오.” 한참을 해야 돼. 제정신이 돌아오면 그때부터 여자들은 떨어. “살려주세요.” (웃음) 그런가 하면 공안직 관료들 집에 들어가면 권총과 실탄들이 나와. 옛날 김태선씨 집 들어갔을 땐 권총 세자루에 실탄이 270발이나 나왔지.

김규항 김태선씨라면.

조세형 치안국장을 지냈던 사람이고 서울시장도 했지. 71년11월이었는데, 유신헌법 반대땜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을 때야. 그땐 권총이 신기해 산에 가서 장난삼아 쏴보기도 했거든. 그래도 호기심이 풀리면 지문을 다 닦아서 훔친 집에 반드시 돌려줬지. 그냥 던져주면 누가 가져갈 지 모르니까, 창문 가까이 가서 냅다 던져. 와장창 깨지게.

김어준 형도 해보고 싶지. (웃음)

조세형 범죄원칙 2조는 “훔친 액수의 30%는 불우이웃돕기를 하자.” 이건 충실히 잘 지켰고… 범죄원칙 3조는 외국인 집은 털지 말자…. 왜 그렇게 결심했느냐면 소년범 시절에 형사들이 어느 대사관이 털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하는 걸 들었거든. 그래서 아무리 도둑질을 해도 국가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일은 하면 안 되겠다…. (웃음)

김규항 애국자십니다. (웃음) 그런 인생을 후회하십니까?

조세형 후우. (한숨)

김규항 후회 안하십니까? (웃음)

조세형 그저 처참한 삶을 살았구나 생각하는 건데, 다른 삶이 주어진다면 그렇게는 안 살죠.

김어준 보석감정사나… (웃음)

김규항 신창원 같은 친구는 선생님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후배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세형 신창원에 대해선 제가 엄상익 변호사를 선임해줬잖아요. 신창원의 아버지나 형 누나 동생이 제 사무실에 가끔 들러요. 그럼 제가 분명히 얘기해요. 자꾸 언론에서 허황되게 만들어 얘기하는데 착각에 빠지지 마라. 신창원은 하나의 흉악범죄자에 불과하다. 창원이도 겸손하게 자기행동에 대해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신창원을 돕는 이유는 두 가지에요. 첫째는 똑같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선배로서의 인간적인 정이죠. 사회가 다 손가락질 해도 나는 벽이 돼 줄 수밖에 없어요. 둘째는 신앙인으로서 창원이가 뭔가를 깨닫길 바라는 거죠. 긍정적이고 밝은 새로운 신앙인으로 갈고 닦여져 온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으니까.

김규항 작년 사이비 대도가 나타났죠. 김강룡이라고…. 그 친구가 선생님과 비교되는 거에 대해서 불쾌하진 않으십니까?

조세형 그렇진 않아요. 하지만 그 친구 행동에 대해서 분석은 할 수 있지요. 이 친구는 자꾸 자기가 훔친 걸 부풀렸거든. 이 친구는 어차피 상습적인 강·절도범인데 이렇게 해서 도둑맞은 사람들의 부도덕성을 부각시켜야 재판국면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으니까요. 그게 첫째고… 두 번째 의도는… 괴상한 범죄자들 심리인데… 징역 들어가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친구들이 대접받아. 이거는 완전히 연예인 재소자라. (웃음) 근데 재판은 아마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을 거야. (웃음)

탈옥에 대한 추억

김어준 청송교도소에선 같은 재소자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으셨나요.

조세형 영웅시하는 경향이 컸지. 교도소 담안에 있는 자나 담 밖에 있는 자나. 뭐 조폭건달 오야붕 할아버지라도 내 앞에 오면 아마추어거든. (웃음)

김어준 탈주를 몇번 하셨죠?

조세형 83년 4월14일 오후3시쯤 서울구치소 구치감에 재판받으러 갔다가 대기실 3층 환기통을 뜯고 처음 했고. 그때 총에 맞아 죽을 뻔 했다 살아났지. 그리고 3개월 지나 서울구치소에서 또 시도했지. 두루말이 화장지, 밥 이긴 것, 빗자루 이런 것들로 마네킹 만들어 내 자리에 놓고(웃음)… 하여간 밤에 천장 뚫고 나가는데 아래층 놈 자식이 도망간다고 소리소리 지르는 바람에…(웃음) 교도소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붙들렸지 뭐.

김규항 청송교도소에서 인질극도 벌이셨다면서요.

조세형 교도관들이 재소자 때려죽이고 은폐했단 말이죠. 1984년10월12일 오후7시 일어난 사건이라. 내가 다 봤지. 그걸 심장마비로 은폐하고, 내가 입만 다물면 편히 징역 살게 해주겠다는 거야. 야 자식들아 내가 도둑질하면서 사람 해치는 걸 제일 질색으로 아는데 니들 사람 때려죽인 거에 야합해서 내가 징역 편히 살 것 같냐 그랬지. 당근작전이 안 통하니까 채찍이야. ‘자살우려자’라 해가지고 쇠사슬로 손을 묶어서 자살을 예방해준대. (웃음) 그렇게 묶여서 7개월 생활했어.

김어준 그래서 밥을 핥아먹고….

조세형 그거 풀려나자마자 교도관 여섯명을 인질로 잡았어. 감방에 긴 형광등이 있거든. 그뒤에 반사 양철판을 떼내가지고 칼 같이 예리하게 만들어서 운동시간에 숨겨갖고 나갔지. 그래 운동시키러 온 교도관 멱살을 잡아 독방에 가둬버렸어. 그렇게 여섯명을 감금해서 사동 하나를 점거했지. 문을 폐쇄해버리고 바리케이트 쌓고… 쇠문 때려부수면 쇠몽둥이가 나오거든. 이걸로 3일 낮밤을 안자고 죽기살기로 교도관들하고 싸웠어. 그뒤엔 수갑에다 족쇄까지 차고 3년 생활을 했어요. 그러니 교도관들이 나라면 학을 떼는 거라. 그래서 지난번에 SBS <주병진의 데이트라인>에 나가서 이 얘기를 했드니 이놈들이 “있지도 않을 말을 했다”는 거야. 내가 만약 없는 말 지어서 했다면 대번에 무고죄로 청송 또 가 있을 거야. (웃음)

김어준 혹시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조세형 출소 직후 비디오숍에서 빌려봤지. 역시 수용자들 구금심리에 대해 비상하게 연구했드만.

김어준 그 영화 말이 됩니까?

조세형 말이 돼. 진짜. ‘대면계호’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죠? 수용자를 철저히 고립시켜놓고 교도관 하나를 하루 24시간 그림자처럼 붙여놓는 거야. 교도관이 교대로 감방에 있는 사람을 항상 얼굴을 보고 있게 만드는 거야. 이것도 부족해 감방 안에다가 CC카메라를 달아 일거수 일투족을 모니터하고. 나는 이 생활을 16년 꼬박 하다 나왔어.

김어준 완전히 미쳐버릴 것 같은데요.

조세형 그렇지. 돌아버리는데… 재미있는 얘기 한 가지만 해볼게. 우리 인간은 생리적으로 종말처리란 걸 해야 하잖아.

김어준 종말처리? (웃음)

조세형 한평도 안 되는 공간 저쪽 끝에 변기만 하나 덩그라니 놓여 있어. 가리는 시설 하나 없고. 문제는 대면계호를 하는 교도관이 구수한 냄새를 맡아가며 시종일관 보고 있어야 돼.

김어준 변비 안 걸리셨습니까? (웃음)

조세형 내가 지난번에 출소해가지고 엄상익 변호사 집에 두어달 있었잖아. 근데 은밀한 곳에서 일을 보니 배변이 안 되는 거라.

김어준 누가 봐줘야 되는데…. (웃음)

조세형 막 땀을 흘려도 안 돼. 한 4개월 고생했어요. <쇼생크 탈출>보면 비슷한 장면이 나오잖아.

도둑질하기 힘든 세상

김어준 그런 영화 한번 찍어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웃음)

조세형 에이 도둑놈이… 미화시키고 그 지랄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야 도둑질하면 저렇게 영웅대우 받나보다”하면 큰일이야.

김어준 우리나라 보안경비기술이 많이 발달했나요?

조세형 많이 발달했죠. 그래도 겁없이 달려드는 녀석들이 있기는 한데. 홈세콤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보안기관들은 더하지. 레이더기지 같은 데는 매설시스템이 있거든. 땅 밑에 매설해놓으면 전파파장이 생겨가지고 대번에 체크되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시스템들이 있는데 엄청 발달했어.

김어준 처음 나와서 적응하기 힘드셨을 텐데, 제일 많이 변한 건 뭐던가요?

조세형 사람들 의식이죠 뭐. 젊은이들 보면 도대체 이해가 안가. 문화 자체가 사이클이 안 맞아. 가수들이 노래를 불러도 얼마나 스피드한지 저게 노랜가 싶고. 춤은 거의 17년 전 체조 수준이야. (웃음)

김규항 지금 젊은 사람들은 다 따라합니다. (웃음) 문화적 취향의 차이일 뿐이죠.

김어준 최근에도 탈주극이 두건이나 있었는데요.

조세형 내가 사실 청송교도소에서 징역살면서 참 많은 걸 생각했어. 한가지 여담을 얘기하면… 10년 선고받은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아들 뻘 됐지. 스물여덟살이었는데, 신창원 못잖은 강단이 있고 영리한 놈이었어. 근데 어느 날 탈옥계획을 세워갖고 와서 자문을 구하는 거라. 계획이 그럴 듯해. 근데 하지 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 탈옥사건들 죽 비춰볼 때 다 말로가 비참하잖아. 교도소를 벗어나는 것만 탈옥이 아니다, 항만봉쇄가 너무 철통같아 함부로 빠져나갈 수도 없다… 탈옥을 하면 또 지하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건 징역살이보다 더 괴롭다” 그렇게 며칠 설득을 했어요. 결국 인격수양하고 공부나 부지런히 하라고 타일러서, 걔가 탈옥 포기하고 영어공부에 집중했어. 지금 거의 영어의 달인 경지에 가 있지.

김규항 엄상익 변호사 글에 보니까 옛 동료들이 선생님을 의리의 사나이로 기억하더군요. 요즘 정치권에서 의리니 신의니 하는 말들이 못된 짓을 서로 밀어주는 뜻으로 쓰이는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조세형 도덕성을 구분하지 않으면 장세동 같은 사람이 최고 의리파게. (웃음) 도덕적 기반이 없다면 진정한 의리가 아니지.

김규항 그렇군요. 득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세형 거 신기하대. 50대에 애아빠가 처음 돼보니까. 아까 기자양반이 전화했을 때도 애가 빽빽 우는데 그놈 참….

태어난 지 한달도 안 된 아들 필립을 바라볼 때마다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는 조세형씨. 오는 5월이면 부인 이영순(39)씨와 정식으로 결혼식도 올린다. 꿈결 같은 새 생활. 그는 이제 정말 평화를 찾은 것일까.

김규항 어준아, 오늘의 결론.

김어준 대도는 괜히 대도가 아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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