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이를 옹호함, 신당을 조롱함
죽은 귀신들 불러내준 ‘무당 이회창’… “장기표 선생 안타깝소이다”

“도무지 논평할 게 없네.”

난감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오늘의 큰 주제는 ‘신당’. “너 먼저 말해봐.” “싫어. 형 먼저 말해봐.” <조선일보>조차 신당을 반대하는 상황. 무슨 군더더기 말이 더 필요하랴. 10여분간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김어준이 신당을 지지하는 이유

김어준 총선시민연대하고 <조선일보>하고 같은 편이 돼버렸네.

김규항 그런 걸 국공합작이라고 하는 거야. (웃음) 오늘 <조선일보> 얼핏 보니까 아주 공평무사하고 옳은 말만 하더라. 당이라는 게 정책이념으로 뭉쳐야 하는데, 아무 원칙도 없이 신당을 만든다고.

김어준 훌륭한 놈들일세. (웃음)

김규항 알건 다 아는 놈들이야. (웃음) 우리가 아는 걸 <조선일보>가 다 알고, 우리가 모르는 걸 <조선일보>가 추가로 알잖아. 그러니 우리는 질 수밖에 없어. (웃음)

김어준 신당에 공격적인 논조를 보니, <조선일보>는 이회창으로 대선 베팅하기로 확정했나봐.

김규항 근데 신당에 대한 니 입장은 뭐냐.

김어준 음… 솔직하게 말하면 신당이 생겨도 아주 제대로 생겼음 좋겠어. 차라리 ‘지역정당’인 것이 분명하면 최소한 국민들이 헷갈리진 않잖아. 우린 ‘경상도당’ 이렇게 천명도 하고… 한나라당은 우린 이제 X도 아닌 당…. (웃음) 한나라당 속에 지역과 반DJ 그리고 극우까지 짬뽕돼 있었잖아. 이번 기회를 통해 한나라는 제대로 된 보수정당이 진짜로 되고….

김규항 그럴 듯한데 틀린 얘기 같다. (웃음)

김어준 지금까지는 적어도 누군가 지역에 근거해 투표를 하더라도 스스로를 방어하고 변명할 거리가 있었잖아. 다른 이유를 댈 게 많았다고. 그러나 명백한 지역정당이 생기면 그런 변명거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거야. 스스로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선.

김규항 그 다음 단계는 뭐야.

김어준 저놈이 빨갱이네 아니네 어쩌고저쩌고 하는, 스스로도 거짓말들임을 알면서 되뇌이는 변명거리들이 사라지고 나면 논점이 분명해진다는 건데, 그 허구를 공략하고 계몽하기 훨씬 용이하다 이거지. 지역정당이 한번은 성공해서 지분을 가졌는데, 그것이 왜 안 되는지 껍데기 벗겨놓고 설득해서 이 지역당을 깨면 다시는 지역당이 힘을 발휘할 여지가 없어지지 않겠냐 이거야.

김규항 그래, 일리가 있긴 하다. 이젠 신당 인물평을 해보자. 조순, 장기표, 이수성, 이기택, 신상우, 김윤환….

김어준 아니, 이기택은 언제 단식을 그만뒀어? 난 굶어죽은 줄 알았는데. (웃음)

김규항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난 이기택이 단식한단 얘기도 처음이다.

김어준 재작년 말인가, DJ가 독재자이고 어쩌고 하더니 단식을 해버리데. 그래서 ‘딴지일보’에서는 ‘국민화합,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차원에서 “밥먹어!” 그랬지. (웃음) 그 이후 소식이 없어. (웃음)

김규항 어준이 덕에 살았구나. 그런 유형의 정치인들은 주체적인 리더는 못 되고 피동적으로나 부각이 되는 스타일이지. 김윤환 같은 사람은 뭐 언론인 출신이고, 또 가장 노회한 모사가 스타일이라 할까.

김어준 죽을똥말똥 하다가 이제 완전히 다시 살아나려고 하는 거 같아. 무슨 비리에도 연루돼서 조사받고 그랬잖아요. 어떻게 됐지? 시작은 하고 끝을 모르니….

김규항 그건 김윤환한테만 해당되는 게 아니지. 우리나라에서 그런 사건이 제대로 끝을 맺는 경우가 없으니까.

김어준 조순은 탈당 이유가 저거 아냐. “이회창이 독재자다! 헤게모니를 지가 다 먹으려고 한다.” 야…. 근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바뀔 때 조순이 대표했었잖아요. 초기엔 자기가 얼굴마담인데도 진짜 마담인 줄 알고 헤게모니 장악에 혼신을 다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곧 이회창한테 빼앗겼지. 헤게모니를 자기도 쥐어보려고 동분서주했었지 아마. 그럼 자기도 독재자였네. 주도권 장악 노력이야 정치 그 자체 아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대우해 주지 않아서 자기 지분 다 잘렸다 이거지 뭐.

조순, 제2의 박찬종 되는가

(사진/신당에 합류한 장기표씨. 정호용씨 등 5공세력과도 그는 친구가 되고 말았다)

김규항 별명이 왜 산신령인가 했더니 그렇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서 그런 거였어. (웃음)

김어준 축지술인가, 둔갑술인가! (웃음)

김규항 이를테면 박찬종 같은 사람이 아무 근거없는 아우라를 굉장히 오래 유지했지만 이젠 거의 껍데기가 다 벗겨졌잖아. 이번에 한나라당에 공천신청했다 떨어지기까지 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리 순진해도 조순 역시 거의 그렇게 된 거 아닌가?

김어준 모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 잘 까먹으니까.

김규항 동문들과 제자들이 입장에 관계없이 좋아하고 존경하고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는 괜찮은 사람인 모양이야.

김어준 난 이회창 하는 걸 보면, 뭔가 콤플렉스 같은 걸 느끼나보다 해요. 정치적으로 경륜도 짧고 자기 계파도 없고, 그리고 항상 잘못한다는 소리를 듣다보니….

김규항 아니, 그런 거보다는 대쪽 같은 성격 때문이 아닐까? (웃음) 어느 신문에 보니까 “나는 이번에 손과 발을 자르는 아픔을 겪었다”고 하대. 가까운 사람들까지 다 잘랐는데 왜 비난을 하냐는 거지. 나는 그 말 믿고 싶어. (웃음)

김어준 손과 발은 왜 잘랐지? (웃음)

김규항 김영삼이 이회창을 일컬어 의리도 없고 신의도 없고… 그래서 그런 사람은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고 했지. 의리? 신의? 하여튼 한국 보수 마초들 21세기에도 변한 게 없어. (웃음)

김어준 자기가 아직도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없다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는 거지. XX XX. (웃음)

김규항 다음, 장기표. 그 양반이 운영하는 신문명정책연구원… 그거 실체하고 질에 대해 좀 아냐?

김어준 잘 모르죠.

김규항 내가 볼 땐 좀 엉뚱해 보이는데.

김어준 장기표씨가 PC통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거든요. 네트워크, 사이버 민주주의, 이런 거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 그 정도로 알고 있죠.

김규항 나도 그 사람이 PC통신에 쓰는 ‘청론탁설’이라는 칼럼을 읽어보는데 좀 황당더라구.

김어준 3김 청산, 반DJ, 사이버 민주주의 혁명… 뭐 이런 데에다 무게를 싣는 주장을 하죠.

김규항 뭐가 신문명인데?

김어준 사이버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이 구현할 세상을 신문명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김규항 나는 사이버상의 뛰어난 인재들의 약진과 그 유익함을 충분히 인정하되, 그거 안 해도 좋을 사람들이 너무 기능적으로 매달리는 느낌이 들 땐 영 어색하거든. 박노해씨도 그런 얘기를 했어. 이 지구변화 사이버시대에 인간답게 사는 길이 도대체 뭔가, 그게 제일 궁금하다. 바보 같은 소린 게 돌도끼를 쓸 때나 인터넷을 쓸 때나 인간답게 사는 길은 똑같아. 다들 사이버 어쩌고 하면서 이게 무슨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를 변화시키는 줄 알고 들떠 있는데, 참 한심한 일이지. 그게 다 자본가들의 장사놀음인데 말야.

김어준 사이버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희망이 있는 건 사실인 거 같아요. 사이버는 도구일 뿐이지, 사람들의 생각이 사이버 때문에 자동으로 변하는 건 아니거든요. 근데 이 도구만 좋아지면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변하고 혁명이 쉽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 물론 사이버는 이제까지 나왔던 어떤 도구보다 더 획기적인 도구이지만 변화를 도와주는 것이지, 변화 그 자체는 아니니까. 결국 또 다시 중요한 것은 콘텐츠죠.

재활용 안 되는 쓰레기들

김규항 우리나라는 경제개발기간 이후에 물질적 발달과 인간의 행복이 정비례한다는 생각이 뿌리 박혔어. 얼마 전 내가 전철로 한강을 건너는데, 갑자기 내 왼쪽에 앉은 아저씨하고 내 오른쪽에 아줌마가 교감을 하더라고. “아, 정말 좋아졌어요…”하고 아저씨가 말하니까 아줌마가 “그렇죠 아저씨? 아이고 우리 20년 전만 해도 한강 건너려면…”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거야. 그러면서 이 아줌마 하는 이야기가 “참 죽은 사람만 불쌍하죠”. (웃음) “이 좋은 세상 못 보고.” (웃음) 내가 볼 땐 이 두 사람이 좋은 세상 만나긴커녕 너무 고단해 보이던데. 나는 그런 세뇌된 생각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오히려 장기표 같은 사람에게서 유지 확대되는 느낌이 들어.

김어준 좀 썰렁은 한데, 물질발달과 인간의 행복, 기만…. 거기서 장기표씨와 박정희를 바로 묶어버리면 그건 형이 오버다. 그 나이에 사이버 민주주의가 정말 가능하다고 믿는 것만 봐도 난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몽상가여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뭐 사이버 민주주의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말이야. 그리고 그런 걸 믿어 의심치 않는 열정 때문에 호감이 가던데. 주의, 주장에 동조는 못해도 말야.

김규항 장기표 선생이 그 86년 인천 5·3 때…, 와 담벼락에 올라가서 대중연설 하는데 정말 대단했어. 글도 잘 쓰고. 근데 좀 안타까워. 좌파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 사회주의 쇠락 이후에 이른바 패러다임의 변화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건강한 길은 아니지.

김어준 하여튼… 장기표씨가 장고 끝에 악수를 뒀다고 봐. 그래도 지명도 있는 재야의 별로 안 남은 인사 중 하나였는데.

김규항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게 아니고 ‘수’를 뒀는데 똥파리들이 달려든 거야. 게다가 그 파리떼가 장기표를 가려버린 상황이고.

김어준 그런 수를 오래 따져보는 걸 장고라고 하고, 그러다 수를 뒀는데 수가 틀린 게 악수라고 해. (웃음) 근데, 과연 장기표씨가 그 판에서 주도권 쥘 수 있을까.

김규항 어떤 면에서도 부각될 이유가 없지. 장기표씨는 나머지 참여인사들에 대해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반성을 요구할 만한 장악력이 없잖아.

김어준 반성하려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아닌데 그게 가능하겠어. 정치생명이 다해가던 사람들이 무료인공호흡기를 단체로 마련한 거 아냐. 그러고보면 이회창은 무당이야. 귀신들을 다시 살려냈으니. (웃음)

김규항 그러니까 이건 쓰레기 재활용이야, 재활용. 참 재활용 말이 나와서 얘긴데 요새 우리 동네 쓰레기 문제가 비상이 걸렸거든. 쓰레기차가 왔다가 그냥 가고 그래. 분리수거 잘못된 집을 불러서 망신도 주고. 어제도 우리 집사람이 쓰레기를 도로 돌려받아 온 거야. 한쪽에 귤 껍데기가 하나 딱 있더라고. 음식이다 이거지. 반장이 그랬대. 이젠 쓰레기에 종이를 넣어선 안 된다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그랬다는 거 아냐. 그럼 애들 종이에 풀이나 껌 같은 거 붙은 종이는 어쩌냐고. 반장이 대답을 못 하더래. 풀이나 껌 같은 게 많이 붙은 종이는 재활용이 굉장히 곤란하거든. 그런 종이를 재활용하는 과정이 펄프 수입해다 만드는 것보다 훨씬 비싸게 드는 거야. 신당이 이런 거하고 비슷한 거 아닌가?

꿈을 파는 정치인은 없는가

김어준 형, 여기 신문에 재밌는 얘기 있다. 이수성씨가 민족화합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정호용씨 등 5·6공 인사에 대한 영입도 적극 도모할 거라고 강력 시사했대. 5·6공 인사를 영입하는 게 민족화합이래. 우린 그럼 다른 민족인가보다. (웃음)

김규항 우리나라에서 민족화합이란 말이 좋게 쓰인 적이 있나?

김어준 주로 합당할 때 쓰죠. (웃음)

김규항 원칙을 무시하고 합할 때 화합이라고들 하지. 근데 그게 언제부턴지 알아? 이승만 때부터가 아닐까? 이승만이 대통령 돼서 처음 경무대 들어가서 한 일이 뭔 줄 아냐.

김어준 몰라.

김규항 망치 갖고 다니면서 전기 콘센트를 다 깼다 그러더라고.

김어준 왜?

김규항 일제라고. (웃음) 진짜야. 일일이 다 깼대. 멋있잖아. 독립운동가 출신이. (웃음) 그러더니 이 사람이 더 큰 망치로 반민특위 깨뜨리고 친일파하고 화합하고…. 그게 민족화합의 시초지.

김어준 친일파 화합…. (하품 하다 말고) 아, 저 얘기 해볼래요? 전혀 상관없는 얘긴데…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김규항 너 또 마우스로 움직이는 세상 그 얘기하려고 그러지.

김어준 그 얘기가 아니고… 지금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이행중이라는 얘길 많이 하잖아요. 그 다음은 무슨 사회가 될 것 같아?

김규항 뭔데?

김어준 모르∼지. (웃음) 내가 요즘 세계에서 가장 큰 미래사회연구소장이 썼다는 책을… 다 읽었다고는 할 수 없고… 몇쪽 읽다가 말았는데 100% 동감하는 이야기가 있거든. 책 이름이 <드림 소사이어티>야. 최근에 번역된 건데. 그러니까, 산업사회나 정보화사회는 본질적으로 같다는 거야. 기계적인 도구들이 인간의 생산활동을 대신해주면 복지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거나, 정보들이 그런 역할을 할 거란 믿음이나 결국 똑같다는 거지. 다 인간의 노동을 어떻게 하면 더 간편화하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거예요. 결국은 기능의 대체인데, 근데 얘네가 생각하는 미래사회는 이야기가 팔리는 사회래. 다시 말하면 꿈을 파는 사회인데, 이런 거예요. 예를 들어 달걀이 있는데, 인공란하고 자연란하고는 가격이 다르잖아. 성분은 100% 똑같은데, 그런데 사람들은 자연란에 10%나 20%의 돈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거야. 왜냐하면 인공란에는 아무런 스토리가 없다는 거지. 반면 자연란엔 스토리가 있다는 거고. 그 닭이 자연에서 뛰어놀았다든가. 하여간 상품의 본질적 기능을 빼고 나서도 덧붙여지는 가치가 있는데, 이걸 이 책에선 스토리라고 정의했어요.

김규항 약간 뜬금없이 들리는데, 그게 우리 현실에 어떤 통찰을 주냐?

김어준 앞으로는 꿈을 파는 사회, 꿈을 파는 시장이 형성된다는 거지.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엔 이 꿈을 팔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아무도 꿈을 안 파는 거야. 저 사람이 우리의 리더가 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따위의 기대감과 꿈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거지.

우리 문화의 유연성을 위하여

김규항 DJ 같은 이는 상당한 아우라가 있었고 꿈을 거는 사람들도 꽤 많았는데, 이제 그 꿈이 다 깨졌잖아. 그럼 새롭게 자연란 낳아야 하나?

김어준 무지 오래 걸리겠지.

김규항 우리나라엔 미래학자가 있나?

김어준 없지.

김규항 있어. 점집 아저씨들. (웃음) 니가 말한 핀란드의 미래학자들은 전체사회의 시스템을 예측하는 거고, 우리나라형 미래라는 것은 자기운명에 대한 궁금증이지. 사주가 얼마나 과학적인데. 통계학이야. (웃음)

김어준 나 또 하나 얘기할 거 생각났어. 오늘 주제하고는 상관없는 건데…. 왜 ‘다라이’ 있잖아. 큰 붉은 색 물통. 이걸 다라이라고 쓰면 안 되나?

김규항 뭔 소리야.

김어준 다라이는 다라이라고 해야 어감이 온단 말이야. 근데 이걸 다라이라고 부르면 일부에선 반드시 시비를 걸지. 그건 일본어라고. 이런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김규항 굳이 못 쓸 이유가 없지. 영문외래어는 다 쓰면서.

김어준 다라이니 바께쓰니 쓰레빠니 했을 때 오는 고유의 느낌이 있잖아. 나는 경우에 따라서는 다라이는 다라이, 쓰레빠는 쓰레빠라고 해도 된다고 생각해.

김규항 그건 뭐 전적으로 개인취향이지.

김어준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자기추억이 그런 단어하고 엮여 있다면, 그리고 그런 맥락의 대화나 글 속에선 그대로 써도 좋다고 생각하거든. 여기에 뭐 잘못된 일본어라는 이유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건 오버라고 봐.

김규항 난 슬리퍼를 쓰레빠라고 해야 맛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고… 막연한 반일의식은 문제가 있다고 봐. 이런 것들이 결국은 정말 적대시해야 할 일본 군국주의자들, 예를 들면 종군위안부가 무슨 문제였냐고 하거나 난징대학살은 없었다고 말하는 그 개새끼들을 구별해서 적대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니까. 적을 불분명하게 한다고.

김어준 하여간 다라이는 다라이라니까. (웃음)

김규항 니 말은 실제 일상에서 쓰는 자연어이기 때문에 리얼리즘을 기본으로 한 연속극 같은 데서는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김어준 그렇지. 저 경상도 촌에서 할머니가 “다라이 가져오라”고 그래야지, 누가 “양동이 가져와라” 그러겠어.

김규항 그게 바로 잘못된 계몽주의거든. 대중을 지도의 대상으로 보는 거지. 이를테면 연속극은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사회의 귀감이나 모범이 돼야 한다는 강박인데 언제나 등장인물이 넘어선 안 되는 선이 있잖아. 도덕이라든가 민족주의 감정이라든가. 너 지난번에 왜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왜 죽냐고 했잖아. 그 영화는 죽는 여자들을 보여준 것뿐이야. 죽는 여자도 있고 끝까지 싸우는 여자도 있는데 그 감독은 죽는 여자를 보여준 거야. 영화나 극에서 꼭 우리가 바라는 전형이 등장해야 한다는 강박은 대단히 야만적인 거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예술 다 망친 게 바로 그거거든.

김어준 다라이니 바께스 같은 말조차 배척하고 경계해야 하는 단어로 취급해야 한다는 자체가 우리 문화의 비탄력이나 경직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생각해. 다라이란 말을 썼다고 해서 우리나라 언어가 파괴되고 민족감정이 훼손되고 한글사랑이 안 되고 그런 건 아니란 말이지. 우리가 그 정도 충격도 흡수하고 소화할 유연성도 없는 사람들이냐 말이야.

다라이탕의 섞어찌개 같으니라고…

김규항 그렇지. 그저 극 속에 다라이란 말을 쓰는 사람이 등장할 뿐이야. 그런데 TV에선 모든 사람이 우와기라고 안 하고 웃도리라고 하고, 양동이라고 하고….

김어준 좀 자신있어 보자고.

김규항 그러니까 우리가 쾌도난담에서 실제로 쓰는 욕도 다 잘려선 안 된다는 거야. (웃음)

정말… 정말 그렇게 해볼까? 오늘부터 쾌도난담에서 나온 육두문자(!!)들을 100% 가감없이 활자화한다? 김규항은 고개를 흔들며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농∼담이야.”

김규항 근데 다라이 얘기가 오늘 큰 주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 거지?

김어준 다라이? 그거 형이 한번 해봐.

김규항 하긴 시골에서 마을잔치 같은 거 하면 찌개를 다라이에 퍼담아.

김어준 다라이탕?

김규항 그래서 오늘 결론이 뭔데?

김어준 다라이는 다라이다. 쓰레빠는 쓰레빠고.

김규항 좀더 학술적으로 말할 수 없을까? 촘스키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언어는 언어다….

김어준 말은 말이다. 다라이는 다라이고…. (웃음)

고경태 기자

 


Copyright 1995-1998 한겨레신문사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