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극우는 러시아의 극좌?
우리나라 사람보다 우리말 더 잘하는 블라디미르 티흐노프(박노자) 교수와 함께

(사진/"한국 사람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큰 형님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너무 심해요.")

“외국 사람 맞습니까?”

김규항과 김어준이 한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정말 한국말을 잘했다. 정확한 듣기와 말하기는 기본. 풍부한 어휘력과 적절한 비유까지 완벽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이미 <한겨레> 칼럼 ‘서울 돋보기’의 빼어난 문장력으로 검증받은 바 있다. 아니, 문장은 그 다음 문제일지 모른다.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그에게 놀라는 것은 한국사회를 보는 예리한 눈이다. 블라디미르 티흐노프. 레닌그라드 태생. 모스크바국립대에서 한국고대사로 박사학위. 현재 경희대 러시아어과 전임강사. 95년 한국 여성과 결혼했으며 오는 3월 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 한국학 교수로 떠날 예정. 한국 이름, 박노자. ‘쾌도난담’ 최초의 외국인 게스트.

러시아가 좋아요, 소련이 좋아요?

김규항 근데 노자가 중국 노자입니까, 폴란드 노자입니까.

박노자 폴란드에도 노자가 있나요?

김규항 로자 룩셈부르크. (웃음)

박노자 그 사람은 유대인이죠. 폴란드 사람은 아닌데.

김규항 아, 그렇군.

박노자 원래 제 애칭이 발로자에요. 성은 저의 스승님의 이름 ‘미하일 박’에서 따왔구요.

김규항 애칭이라면 아명 같은 겁니까?

박노자 그렇죠. 소련에선 본명보다 아명이 잘 쓰여요. 미국과 비슷하죠.

김규항 김어준씨는 아명이 돌쇱니다. (웃음)

박노자 마당쇠 같은 거…. (웃음)

김어준 평양에서 공부하셨나요?

박노자 한때는 평양엔 가고 싶어 죽을 뻔했죠. 못 가봤어요.

김어준 한국말을 굉장히 정확히 구사하시는데….

박노자 평양에 가보고 싶어도 지금은 돈이 비싸서 못 가죠. 소련 국적으로는 가는 거 자체도 문제고….

김규항 근데 지금은 소련이 없어졌는데 왜 자꾸 소련, 소련 하십니까? 향수 때문입니까. (웃음)

박노자 부분적으로 향수일지도 모르죠. 아마 습관일 거예요.

김어준 소련이 좋아요, 러시아가 좋아요? (웃음)

박노자 혹시 소련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세요?

김어준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아닙니까?

박노자 소비에트가 ‘어드바이스’라는 뜻이에요. 조언. 노동자들이 서로 합체화해서 서로 어드바이스하는 게 소비에트라는 거죠.

김어준 아니 그런 뜻이….

박노자 그러니까 평민들의 품앗이 같은 거예요. 원래는 노동자들의 일종의 공존자치기구였죠.

김규항 우리로 치면 두레 같은 건데….

김어준 그러니까 질문의 요지는 소비에트가 좋습니까, 러시아가 좋습니까?

박노자 흔히 한국에서 쓰는 말이 양비론이라고…. (웃음)

김어준 저 한국적 처세의 자세를 보라. (웃음)

박노자 그러니까 ‘양시’이면서 ‘양비’죠. (웃음)

김규항 소련이 해체됐을 때 선생님은 몇살이었습니까?

박노자 그건 나이를 묻는 간접적 방법인데…. (웃음)

<조선일보>는 프라우다 빼닮았다

(사진/극우와 극좌는 통한다. 박노자 교수는 <조선일보>를 보며 옛 소련 시절 국가주의와 안보를 강조하던 <프라우다>를 떠올린다고 한다)^M

그의 나이에 사람들은 놀란다. 신문칼럼에 나오는 얼굴 사진을 보면 적어도 40대.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던 90년에 19살이었으니, 실제로는 10살 이상 젊은 셈이다. 세 사람은 한참 한국과 러시아의 나이 개념을 들먹이며 서론을 길게 끌었다. 군대를 갔느니 안 갔느니(박노자 교수는 안 갔다), 16살에 대학을 갔다느니(박노자) 대학을 12년 만에 졸업했다느니(김규항), 군대에서 원산폭격을 해봤냐느니(박노자) 정말 해봤다느니(김규항·김어준) 하다가….

김어준 <조선일보> 싫어하시죠. 글 쓰신 거 보면 그럴 것 같아.

박노자 싫어할 가치가 있나요? (웃음) 보기는 봐요. 그쪽에서 무슨 소리 나오나 알아야 하니까.

김어준 우리 편이네. (웃음)

박노자 조선일보가 저한테는 무얼 방불케 하냐면… 소련제국 시절에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라고 있었잖아요.

김어준 그럼 <조선일보>가 빨갱이란 말입니까. (웃음)

박노자 <프라우다>하고 투가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말이죠. 안보문제 강조하고… 제가 어렸을 때 <프라우다> 보면서 다 배운 거예요.

김규항 지금도 <프라우다>가 있나요?

박노자 있죠. 체첸전쟁을 굉장히 찬양하죠.

김규항 아직 한국의 일반 국민들 중엔 “<조선일보>가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러시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어느 정도 차이입니까.

박노자 비슷하죠. 러시아도 한국처럼 권언유착이 대단하거든요. 대부분의 프린트매체는 물론 전자매체까지 재벌들이 소유하고 있고, 그 재벌들은 정부하고 상당히 복잡한 유착관계에 있습니다. 안보, 대외정책, 소수민족정책에선 정부노선을 크게 벗어날 수 없게 통제받고 있어요. 대외적인 전쟁이라든가 무기생산하고 관계된 분야의 문제들에 관해 국민들을 세뇌시켜야 하는데, 여기서 언론을 이용하는 거죠. <조선일보>도 반북적인 콤플렉스라든가, 미국에 대한 일종의 큰형 콤플렉스라든가 그런 콤플렉스들을 자극하고 조장해가면서 한국인들의 대외의식을 체계적으로 조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어준 캬하!

김규항 인민의 정신 속에 그런 마취가 통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일 수도 있죠.

박노자 소련시대에 평민들은 그렇게 잘 살지 못했거든요. 간부들하고 생활수준의 차이가 엄청났어요. 그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죠. 그리고 이른바 선진국들이 우리보다 잘 산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고요. 이것에 대한 열등의식이 꽤 많았는데, 관제언론들이 그 열등의식을 마취시키기 위해 군사적인 우월의식을 많이 조장했어요. 우리들이 많이 못 살고 어렵지만 소련은 군사대국이고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히틀러를 무너뜨린 위대한 세력이라는 프로파간다를 마구 퍼부음으로써 주민들의 열등의식을 군사의식으로 교화했어요.

김어준 체제 유지의 결속력을 그런 식으로 생산해냈군요.

박노자 사실 한국의 평민들도 못 사는 거잖아요. 유럽과 비교하면 형편없거든요. 지금 한국인의 일년 평균휴가가 4일인가 5일인가 하던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아시겠지만 노르웨이 보니까 거의 5주 정도는 평균인데…. 한국인의 노동시간이라든가 노동환경, 상사와 부하의 관계란 건 제가 보기엔 거의 수용소 정도예요. 근데 한국의 평민들도 재벌이나 정치인들이 얼마나 호화롭게 사는지는 다들 알잖아요. 거기에 대한 열등의식을 북한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변환시키려면 언론공세가 필요한 거예요. <조선일보>가 바로 그 기능을 하는 거죠. 그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못났는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선진적이고, 미국과의 관계가 얼마나 우호적인지 따위를 머리에 집어넣는 거예요.

한국은 옛 소련보다 더 무신론 국가

김규항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 중에는 한국의 장점이나 따뜻함 같은 걸 자꾸 발견해서 글을 쓰는 분들도 많던데요. 박 선생님은 그런 거 없어요? 다 마땅치 않습니까? (웃음)

박노자 그 따뜻함이라는 건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권의 보편적인 거죠.

김규항 한국 사람들의 특별한 장점 같은 건 없어 보입니까?

박노자 뭐 일부 특권적인 위치 때문에 썩어빠진 사람들 빼면, 다 순박하죠. 그리고 좀…. 뭐라 그래야 하나, 어떤 때는 굉장히 약해보이는 면이 있지만, 굉장히 강해지기도 하죠.

김규항 이를테면 IMF 터지고나서 금모으기 할 때 사람들이 줄을 쫙 선다거나, 일본에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하면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난다거나.

박노자 그건 관제 붐이죠.

김규항 관제 붐인데 국민들의 정서 속에 그런 게 있어요. 집단주의적라는 비판도 있고.

박노자 그건 오랫동안 길들여진 거겠죠. 일제 때부터.

김어준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언론들을 보면 무슨 국제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항에서 막 들어오거나 또는 떠나는 외국인들을 붙잡고 한국이 어땠느냐 굉장히 많이 물어보거든요.

박노자 열등감이 심한 거죠. 동남아 사람한테는 물어보는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미국 사람한테 듣고 싶어하는 거지. 형님한테. (웃음)

김어준 에이 XX. (웃음)

박노자 정확히 말하면 우리를 다스리는 사람들한테. (웃음) 무의식적으로는 세계질서의 지배관계를 의식하는 행동이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들 알잖아요. 그래서 그 관계 속에서 우리 위치가 완전 왕따가 아니다….

김어준 불안하니까 확인받고 싶다는 건데, 그럼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박노자 오랫동안 대안이 없었잖아요. 그리고 지금도 현실적인 세계적 지배질서라든가 또는 국내적 지배질서에 대해 대안제시를 못하고 있잖아요.

김어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나 정체성 확립도 없었고.

박노자 현실적인 지배관계를 절대시해왔죠.

김어준 우리는 국제역학관계 속에서는 항상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해왔나?

박노자 근데 현실적인 그런 관계를 절대화하지 못하는 유일한 힘이 신앙심이거든요. 절대적 세계를 아니까 현실적인 게 상대적이란 생각이 드는데, 한국에서는 목사들이 굉장히 많지만 종교가 없는 것 같아요. 한신대 나온 김규항 선생님한테는 죄송합니다만….

김규항 아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웃음)

박노자 중도 많고 목사도 많지만 종교가 없어요.

김규항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는 예수하고 거의 관계가 없죠. 처음부터 미국의 근본주의적인 기독교가 들어왔고.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생활문화에 가까운데….

박노자 전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고 있지만 불교 역시 한국에선 하나의 무속으로 됐죠. 미국에서 오랫동안 소련 가지고 무신론 국가다 어쩌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한국이 더 무신론 국가다 싶어요. 현실을 거의 절대시하고, 현실적으로는 힘센 놈이 누구고 약한 놈이 누구인지 뻔히 알고… 어떻게든 힘센 놈한테 접근하고 싶어하고.

권력에 복종하는 데 익숙한 학생들

김어준 근데 우린 그걸 바로 국가경쟁력이라고 불렀죠. 힘센 놈이 시키는 대로, 위에서 하라고 하는 대로 죽어라 일하는 걸….

박노자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회사에서도 사람을 마음대로 볶아먹을 수 있었던 거예요. 우리 학교 같은 경우 보면 교수가 학과사무실의 조교한테 자신의 개인적인 일까지 마구 시키거든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라가 세상에 없어요.

김어준 권력에 복종하는 데 익숙한 거죠.

김규항 이야기를 좀 돌려보겠습니다. 80년대 한국의 청년세대가 북한현실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생각했다가 지금은 지나치게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고 쓰신 걸 봤습니다. 소련의 사회주의 경험이 아무런 유익함이 없었나요?

박노자 근데 우리는 일단 소련에 대해 사회주의라고 부르지도 않아요. (웃음) 물론 당시 교육수준과 문화수준이 한결 높아진 면이 없지 않았어요. 재정러시아 때는 문맹률이 70% 이상이었잖아요. 어쨌든 우린 감옥은 다녀오지 않았지만, 이른바 사회주의로부터 탄압을 받고 그러면서 감옥의 느낌이 뭔지 대충 알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레 모든 권력에 대한 의심을 먼저 해야 한다는 의식을 하게 되죠. 그게 아마 소득이라면 소득일 겁니다.

김어준 제가 얼마 전 옛 동독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런 얘길 하더라구요. 동독이 서독과 통일되고 나서 제일 먼저 무너진 것이 동독의 지식인사회였대요. 갑자기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나선 사람들이 우선 살아남고 그러지 못한 이들은 다 죽고….

박노자 죽이진 않았지요.

김어준 궁금한 건 러시아는 어땠나 하는 건데….

박노자 러시아 같은 경우는 오히려 신자유주의하고 시장경제를 제일 강조하는 사람들이 옛 공산당 관리들이에요. (웃음) 대부분 소련 시절에 반소활동을 하거나 그 활동에 좀 공감했던 사람들은 그 반대로 인권이라든가 보편적인 종교라든가 또는 신좌파 노선이라든가 그런 걸 잡고 사는데.

김규항 역할이 바뀌었군.

박노자 반대했던 놈들이 반대 계속하는 거죠 뭐. (웃음)

김규항 한국으로 치면 좌와 우가 딱 뒤집혔네. 이쪽에서 극우가 그쪽의 극좌 구실을 하는 거고.

박노자 근데 러시아에서는 요즘 좌와 우를 분리하는 것보다는 권력에 붙었느냐 안 붙었느냐, 권력에 대한 태도가 뭐냐 그런 걸 제일 따지거든요.

김어준 386세대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박노자 알고 있죠. 일체 국민들이 다 학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웃음) 근데 학번이 거기 끼어 있는 걸로 봐서는 상당히 재밌는 표현이라고 봐요. 대학 안 나온 사람은 시민도 아니라는 무의식을 반영하는 거죠. (웃음)

김규항 학교에 계시면 운동권 학생들도 볼 텐데 어떤 생각이 들어요?

박노자 제가 학교에 있으니까 두 가지를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운동권이 거의 없다는 거. (웃음) 제가 직접 조사를 한 적도 있습니다.

김규항 요즘에 아주 적죠. 어쨌거나 그 학생들을 보면 어떠십니까.

박노자 한심하단 생각이 들어요. (폭소) 그 사람들은 소련 무너지고 배운 게 하나도 없어요. 사실 엄청난 걸 배울 수 있었는데 말이죠. 예를 들어 운동권 하는 애들에게 인생계획을 물어보면 상당수가 솔직하게 정치활동 하는 거라고 답해요. 권력지향적이죠. 어떻게 하건 일종의 사회적 신분상승을 꿈꾸는 거죠.

김어준 뭔가 행세를 해보겠다….

왜 소련 붕괴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박노자 일체의 권력들은 다 부패의 씨앗을 일단 품고 있거든요. 근데 그걸 전혀 못 배웠어요.

김규항 학생운동 하는 당사자한테 “한심하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합니까?

박노자 그럼요.

김규항 그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박노자 사회를 고치려면 당연히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죠. 그러면 제가 따지거든요. 왜 저학년 아이들한테 반강제적으로 뭘 시키려고 하느냐, 왜 자신이 고학번인 걸 특권으로 생각하느냐. 그럼 또 학생들은 이렇게 말하죠. 당연히 저 권력 반대하기 위해서 이쪽 권력이 필요하다, 동원수단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느냐.

김어준 박 선생님은 아무래도 아나키스트 같은데….

박노자 맞아요. 저 무정부주의자 성분이 있어요.

김규항 그러면 모든 사람이 박 선생처럼 약간 무정부주의적인 자각을 하고 건전한 시민으로 변하면 세상이 변하는 겁니까?

박노자 글쎄요. 제가 자신할 수 없는데.

김규항 남는 문제는, 그런다고 해서 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이 알아서 반성하거나 스스로 물러나냐는 거죠. 그쪽을 정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다를 게 없죠.

박노자 우리 과를 예를 들어 얘기해볼게요. 운동권 학생이 과 대표를 했었는데… 저학년 학생들에게 뭘 막 시키고 그랬지요. 그건 좋은데 교수가 그 학생 보고 ‘야 이놈 이리 와서 이것 좀 해주라’ 그러면서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면 개처럼 달려와요.

김규항 지금 개라고 하셨습니까. (웃음)

박노자 현실적으로 막강한 권력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라는 거죠.

김규항 운동권 성향의 학생이 그랬단 말이죠.

박노자 자신에 대한 교수의 권력이 정당하다고 보는 거죠. 그러니까 일체 학생들이 어떤 교수가 자기에게 그런 소리를 해도 달려오지 않아야 사회가 달라질 거예요.

김규항 박 선생님의 글을 보면 굉장히 과학적인 데가 있는데… 그것이 소련 시절 마르크스주의 교육을 받은 경험과 관련이 있다고 보시나요? 사실 사회과학이란 게 마르크스 덕에 만들어진 건데 말이죠.

박노자 한때 현실적 사회주의 문제점의 해결은 마르크스에 있다고 생각했죠. 특히 마르크스가 1842년에 쓴 <사회경제초고>를 탐독했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러시아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었죠.

김어준 요즘 한국 얘기를 해보죠. 정형근이라고 아세요?

박노자 아, 그 안기부에 근무했던 고문 실시자? (웃음)

김어준 안 잡혀가려고 용을 썼잖아요.

박노자 그런데 그 사람 잡혀들어가도 뭐 고문 당하나. (웃음)

김어준 왕창 당할지도 몰라. (웃음)

박노자 고문 당하지도 않을 놈이 안 잡혀가려고 발버둥치는 걸 보면 동양 사람도 아닌가 싶고. (웃음)

김어준 어처구니없으십니까?

박노자 어처구니없다기보다는 그 사람을 뽑은 사람들이 한심하죠.

정형근과 KGB

김규항 옛 소련에서도 그런 임무를 맡았던, 가령 KGB라든가 그런 사람들이 다 청산됐습니까?

박노자 지금 푸틴의 전임자 두 사람이 다 KGB의 총수였어요. 스테파신도 그렇고 프리마코프도 그렇고. 근데 요즘 러시아에서 어떤 농담이 제일 잘 통하냐면 “우리나라 옥스퍼드는 야셰니에보”라는 거예요. 야셰니에보는 KGB의 후신인 대외첩보국이 있는 자리예요. 그곳 출신이 재벌이라든가 마피아계를 주름잡고 있죠.

김어준 나도 총순데. (웃음)

김규항 러시아도 역시 그런 세력을 어떻게 청산하느냐가 사회적 숙제일 텐데. 어떤 운동이 있나요?

박노자 오히려 대부분 향수를 느낄 뿐이에요. KGB 출신이면 힘세고 강하고 책임있고, 나쁜 소수민족들을 잘 때려잡겠다… 그런 망상이 있죠. 젊은 사람들까지 그래요.

김규항 문제가 많은 사회일수록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란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은 아무런 책임없이 그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제공받아야 하기 때문이죠. 한국의 교육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세요?

박노자 제가 어렸을 때 영국 민요들을 많이 들었어요. 이건 제국주의와는 관계없고 중세적인 건데 이런 게 있어요. 한 송아지가 도살장에 잡혀가야 하는데 어떤 꾀꼬리가 날아와서 말을 붙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송아지가 꾀꼬리 보고 당신은 자유롭게 날고 있는데 나는 도살장에 끌려간다, 세상이 왜 이러냐 그랬죠. 꾀꼬리가 지껄이면서 하는 말이, 그건 그래도 당신의 선택이라는 거예요. 누가 당신더러 처음부터 송아지로 태어나라고 했느냐…. (웃음) 그러면서 송아지는 계속 끌려가고 새는 계속 날아다니고 그러는데, 저는 한국 아이들이 학교 등교하는 걸 보면 왜 송아지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게 연상되는지 모르겠어요. 무력감을 느끼죠. 이 제도를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도살장을 부술 수도 없고.

김규항 너는 왜 송아지로 태어났냐…. (웃음)

박노자 저는 한국의 아이들이 등교하는 걸 보면 한 가지 또 마음이 편치 않은 게 교복이에요. 소련에서 교복은 공산당 권력의 상징이었어요.

김어준 한번 없어졌다가 다시 생겼죠.

박노자 소련에서는 교복반대운동이 우리 고등학교 때 있었어요. 86, 87년.

김규항 그런 운동까지 일어난 걸 보면 꽤 성숙한 사회였네요.

박노자 폭력에 시달리다 보면 그래도 정신이 들잖아요.

김규항 교복 안 입겠다고 데모하면 문제가 없었나요?

박노자 문제가 있었죠. 그래도 그때는 조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때였어요. 그래서 저희는 교복을 안 입었죠. 입으면 배신자가 되는 거였죠. (웃음)

그 밖에도 거창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다. 영어공용화론에서 박정희 기념관 문제, 러시아의 대중예술과 빅토르 최, 한국의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얼마 안 걸렸지만 오늘 대담이 워낙 알차게 진행됐다”는 김규항의 말에 박노자 교수는 “두 시간이면 과잉노동”이라며 농담을 건넸다.

김규항 어준이, 오늘의 결론.

김어준 (한참을 생각하다가) <조선일보>는 <프라우다>였다? (웃음)

김규항 어떤 것 같습니까.

박노자 괜찮은 것 같네요.

김어준 조선, 빨갱이로 밝혀지다. 빨리 사과문 발표해야겠네. (웃음)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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