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어떻게 죽여요”
<넘버.3>마동팔, <쉬리>박무영, <해피엔드>서민기와 나눈 대화

(사진/"배우란 인간을 표현하고 인간을 연구하는 직업. 유흥의 대상으로 비치는 건 싫습니다)

눈뜨고 볼 수 없었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인정사정없는 칼부림. 한번… 두번… 세번…. 그의 밑에 깔린 아내의 가슴을 향해, 그는 끝없이 칼을 꽂았다. 불륜, 그리고 응징!

“그런데 몇번이나 찔렀죠?” “찌르기는 밤새도록 찔렀죠.”(웃음). 너무 잔인하고 괴기스런 대화일까.

“처음에 바둥댈 때는 도연이 가슴에 판을 대고… 그래도 꽤 아프거든요. 너무 미안하대요. 칼은 스프링 칼이에요. 그 다음엔 마네킹 놓고 밤새 찔러댔죠. 으….” 그렇다. 이건 가짜다. 영화다.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 그 주인공 서민기가 왔다. 지난주 ‘쾌도난담 펑크’를 자책하는 현실 속 최민식의 모습으로.

“연말에 열흘 정도 스트레이트로 술자리가 있어서… 아휴, 죽겠어요.” 그는 피곤한 모습이 완연했다. 자주 밭은기침을 해댔고, 쉴새없이 냉수를 찾아 벌컥벌컥 마셨다. <해피엔드> 이후 그는 일산시 자택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채 쉬는 중이라고 했다.

살인장면은 원래 ‘상상’

(사진/<해피엔드>)

김규항 영화에서 보면, 처음엔 굉장히 우유부단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로 나오는데, 갑자기 아주 주도면밀한 살인을 저지르게 되거든요.

최민식 사실은요. 제가 아내를 죽이는 장면은 현실이 아니에요. 원래 시나리오에는 제 상상이었어요. 편집과정에서 완전히 짜깁기가 새로 됐어요.

김어준 그게 맞겠다. 소시민한테는.

최민식 물론 결국엔 제가 살인을 하긴 하는데, 하는 장면이 안 나오는 거였지요. 누가 봐도 김일범(주진모 분)이 죽인 걸로 됐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진실이 밝혀지는 거였죠. 제가 자책하는 걸로 끝나는 거였는데, 아마 그래서 톤이 튀었을 거예요. 갑자기 킬러가 돼가지고….

김규항 뭐, <쉬리>에서 워낙 많이 죽였기 때문에 톤은 유지가 되요.(웃음) 근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내용을 고친 게 서운하십니까.

최민식 서운하죠.

김규항 덜 자연스럽다는 겁니까.

최민식 살인을 통해 너무 직접적으로 배설을 해버리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가부장적이라는 말도 나오고….

김어준 감독 부를까요?(웃음)

최민식 왜 그렇게 했냐고 했더니 “그게 더 솔직할 것 같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섭섭하지만 제가 어필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거고… 또 나름대로 편집의 고유권한도 있는 거니까. 다만 미리 알았으면 살인 장면의 강도를 약하게 한다든지, 코드를 다르게 설정했을 텐데. 요건 환상인 줄 알고 마음 푹 놓고 그냥 했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은 격이 됐죠.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어 보이잖아요. 비실비실하던 놈이 갑자기 지문을 닦고, 전문적 킬러인양….

김규항 그게 <쉬리>하고는 일관성이 있다니까.

김어준 저거하고도. 그 뭐냐 ‘타이어 선전’있잖아요.(웃음) 이번에 전도연씨하고 연기를 하셨는데, 영화 내에서의 연기 그 자체로 보다는 사실적인 섹스신을 했다는 것 때문에 전도연씨가 훨씬 더 주목을 받았잖아요. 뭐 섭섭하고 그런 건 없습니까?

최민식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죠. “<해피엔드>는 전도연이 홀딱 벗고 나온다” 이게 막 강조가 되니까 내가 에로 영화 찍었나 이런 생각도 들고….(웃음) 근데 도연씨 본인도 많이 다쳤어요. 심적으로…. 좀 씁쓸하더라구요. 그래도 나름대로 잘 나간다는 여배우가 연기를 위해 과감히 벗는다는 건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지….

김어준 대중문화를 보는 우리 언론의 유치한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 거죠. 벗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만 주목하는 거 아닙니까.

김규항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 죽일 것까지 있나, 또 죽이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던데, 실제로 본인이었다면….

최민식 아휴, 어떻게 죽여요. 근데 모르죠. 그와 똑같은 상황을 눈으로 보면… 용의주도한 살인은 못할 것 같고, 우발적으로는 글쎄….

김규항 전도연씨가 남자친구와 갈등을 일으키는 부분이라든가 이런 걸 보면 디테일한 설정이 아주 뛰어난데… 가령 칫솔 문제로 다툰다거나… 아주 실제적인 느낌입니다. 물론 나는 그런 경험이 없지만.

김어준 이야기가 다른데, 형.(웃음)

최민식 저도 시나리오를 보고 놀란 게… 젊은 감독이 아주 내공이 탄탄해요. 사람 심리에 대한 이해와 표현이….

김어준 오랜 엽기애정행각 끝에 깨달은….(웃음)

최민식 자료를 많이 수집했더라구요. 사람을 죽일 때 한방에 죽이냐, 영화에서 죽인 것처럼 난도질로 죽이냐… 강력계 형사들도 많이 만나 보고.

장모의 충고

김규항 결혼 전 장모님께 처음 인사를 갔을 때 “자네가 사회생활하다보면 여자를 만날 수도 있는데… 물론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평생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는 못 하겠다. 다만 그 얘기가 다른 3자의 입을 통해서 내 딸에게 들어가면 자네는 정말 내 딸을 배신하는 거다.” 이런 식의 얘기를 하셨어요. 그말 들을 땐 어찌나 민망했던지… 그런데 그뒤 시간이 좀 지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니까, 현실적 차원에서 현명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1부1처제는 인간적인 제도가 아니죠… 평생 한 남자 한 여자의 정신적 육체적 사랑이 유지될 수 있다는 건 억지스러운 건데, 외도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웃음)

최민식 이거 작살나는데.(웃음)

김어준 결혼하신 지 얼마 안 돼셨다는데, 함부로 말을 못하지.

김규항 외도를 했냐고 묻는 게 아니라, 견해가 어떤지….

김어준 그게 그거지.

최민식 참 비극이죠. 저도 동감해요. 평생 한 남자 한 여자를 바라보는 도덕적 굴레에… 그게 가장 인간다운 삶인가…. 근데 사람이 뜻대로만은 안 되잖아요. 싫증이 나게 마련이고. 아무리 양귀비 같은 여자와 살아도 3년이 가면…. 사랑에 푹 빠지면 들뜨고 흥분하고 그러는데, 그레 너무 오래 지속돼도 죽는다고 하더라구요.

김어준 저 무서운 합리화를 보라.(웃음) 언제 결혼하셨죠?

최민식 돌아온 총각이었다가, 다시 결혼한 지 한 3개월 됐죠.

김어준 함부로 얘기하면 거국적으로 X됩니다. 우리 마누라도 이거 보는데.(웃음)

김규항 어준아. 너는 외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김어준 나는 노코멘트.

김규항 부인이 체육과 출신이라서, 수시로 맞는답니다.(웃음)

김어준 그런데 말이야, 형네 장모님이 그러셨다는 걸 뒤집어, 여자가 남자집에 와 인사를 할 때, 장인이 그와 똑같은 얘기를 며느리에게 한다고 해봐요. 얘기가 될까?

김규항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개연성이 별로 없지.

김어준 내 말은 뭐냐면, 상대적으로 남자들이 많이 외도하고 그래서 장모님 말씀을 ‘합리적’인 것이라 받아들이고 싶어하는데, 그 반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그 ‘합리적’이란 건 사실은 남성들의 이기적 합리화지. 그걸 합리적이라 하려면 그 반대도 말이 된다고 해야지.

김규항 그건 안 당해봐서.(웃음) 어쨌든 나는 아내하고 피차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두고 살지만 어떤 경우에도 인간적 배신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게 내 생각이야. 나도 결혼한 지 10년됐지만 아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아냐.

최민식 맞아요. 나중에는 들끓는 사랑보다는 친구같이 되죠.

김규항 친구를 가슴아프게 하면 안 되잖아. 난 실제로 아내한테도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제발 나 모르게 해달라고 부탁해.(웃음)

최민식 정말 절체절명의….

김규항 알면 이성을 잃어버려. 물론 나중에 모든 게 결정이 난 다음엔 정식으로 고백해야지.

김어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합시다.(웃음)

“내 몸은 악기다”

(사진/<쉬리>)

김규항 최민식씨는 원래 연극에서 출발하셨죠.

최민식 네.

김어준 연극하다가 TV나 영화쪽에서 스타가 되는 경우가 많은가요?

최민식 요샌 많죠. <쉬리>에서 제 부하로 나왔던 이들도 다 연극판에 있던 친구들이에요.

김규항 오래 전 선배세대들은 좀 거북해하지 않았습니까?

최민식 요즘은 대개 좋은 드라마나 영화가 있으면 하자는 쪽이지요. 각 매체마다 장단점이 있거든요. 그 매체를 어떻게 이용하고 처신하느냐가 중요하죠. TV나 영화로 진출하면 타락한 양 보는 건 촌스런 발상이죠.

김어준 영화나 TV드라마, 연극 각 매체별로 연기의 특징이 있나요?

최민식 예를 들어 음악도 피아노로 연주하면 좋을 게 있고, 바이올린이나 통기타로 연주하면 좋을 게 따로 있잖아요. 요 차이에요. 저는 몸이 악기잖아요. 제몸을 조율하는 문제죠. TV 같은 경우엔 연극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액션을 크게 하면 안 되죠. 저도 되게 오래 걸렸어요. 처음 <야망의 세월>하면서 “저놈 혼자 연극하네”소릴 많이 들었죠.

김어준 <해피엔드>에서 마지막 사진 보고 울 때 안약 넣는 겁니까.

최민식 안 되죠. 저는 싫더라구요. 일부 후배들이 그럴 땐 정말 패주고 싶어요. 겸손 떠는 게 아니라…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야 하잖아요. 저희들은 무당이에요… 속임수로 하면 안 되는 직업이에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건 일종의 문화범죄죠.

김어준 문화범죄라, 멋있는 카피인데….

최민식 무당이 굿하는 거하고 우리가 연기하는 거하고 다를 게 없거든요. 최근 개봉된 <박하사탕> 같은 경우 설경구가 표현했던 김영호라는 역할… 그거 얼마나 한많은 인간이에요. 경구의 몸을 빌어서 풀어줬거든요.

김어준 <쉬리>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그 영화가 왜 그렇게 떴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까지 뜰 영화는 아니었잖아요.

최민식 그렇죠. 삼삼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좀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신파… 눈물…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슴아픈 사랑 앞에서는 다 무너지잖아요. 홍콩에서도 개봉했지만 여성들이 100% 다 울고 나온대요.

김규항 꼭 신파라고 표현하셔야겠습니까.(웃음)

최민식 쉽게 표현해서 그런 거죠. 만약 멜로적 요소가 빠지고 저랑 석규랑 디립다 총질만 했으면 그렇게 관객이 들었겠어요?

김어준 폭파신도 좀 어설펐죠.

최민식 어설픈 정도가 아니죠. 결국 강제규 감독 기획력의 승리예요. 관객들의 심중을 유효적절하게 찌른 것….

김규항 지식인사회에서는 <쉬리>가 반공 영화라는 얘기가 있었죠. 저는 의견을 달리합니다만.

최민식 <쉬리>는 아주 철저한 상업 영화예요. 고매한 이데올로기를 보여 주려 한 것도 아니고, 철저히 대박을 겨냥해서 만든 거니까. 그건 너무 지나치게 심각한 생각은 아니신지.

김어준 전 <쉬리>를 보면서 학을 띤 부분이 있었는데. “이 시대의 히드라…” 어쩌구 하는 대사는 거의 ‘똘이장군’ ‘배달의 기수’였는데. 그거 오버가 너무 심했던 거 아닌가.

최민식 오락 영화지만 그래도 뭔가 ‘입장’이 실려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신이 하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거였는데. 논리를 위한 논리로 튀어버렸지요.

연예인과 문화인

김어준 요새 한국영화가 잘 되잖아요. 그게 영화판에 계신 분으로서 피부로 느껴지나요?

최민식 하도 PC통신에 영화평이 많이 뜬다길래 얼마 전 컴퓨터 사서 보니까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어영부영 영화 했다가는 한순간에 죽겠구나….

김규항 IMF 그 어려운 시기에 스크린 쿼터 싸움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국민들의 지지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거꾸로 영화인들은 자기 밥그릇이 걸린 스크린 쿼터 외의 다른 사회 문제에 어떤 관심을 보여 왔는가를 생각하면 참 염치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하다못해 IMF 때 실직자들을 위한 위로상영 한번이라도 한 일이 있던가….

최민식 죄송합니다. 대표로 사과드리겠습니다.(웃음)

김규항 최민식씨는 대표성이 부족해요. 동강살리기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으니까….(웃음)

최민식 모르게 하고 싶어요. 티나지 않게…. 그것도 하나의 쇼맨십이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근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희는 연예인이 아니라 문화인이라는 거죠. 수잔 서랜든이나 제인 폰다 같은 여배우들은 반전운동에 나서고 그러는데, 왜 우리 배우들은 그렇지 못하냐는 거죠. 쇼프로나 오락프로에 나오기나 일쑤고. 안성기 선배나 문성근 선배들이 나름대로 사회에 관심을 갖는 그런 건 본받아야 한다고 봐요.

김어준 문제는 최민식씨처럼 생각하는 배우들이 많은데 우리가 모르는 겁니까, 아니면 진짜 없는 겁니까.

최민식 관심있는 배우들 많아요. 단지 루트를 모른다거나 좀 쑥스러워하고…. 저도 이번에 환경운동연합 가입했거든요. 근데 이 직업의 특성이… 자칫하면 그런 게 왜곡이 되기 일쑤예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모르게 하자, 돈 생겼을 때 회비라도 좀더 갖다 주고….

김규항 방금 쇼프로나 오락프로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배우들 말씀을 하셨는데… 최민식씨야 되레 TV에 안 나가는 것이 자기관리에 유리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처지에 있는 연기자들도 많잖아요.

최민식 저도 5∼6년 동안 소강상태가 있었어요. 제 자랑 같지만 그 기간 중에도 오락프로에서 저를 보신 분은 없을 겁니다. 물론 오락프로도 있어야 해요. 그런데 배우가 마치 그게 주업무처럼 된 양 비치는 건 싫단 말입니다. 배우란 인간을 연구하고 인간을 표현하는 사람들인데, 오락과 유흥의 대상이 되는 게…. 사실 포장마차에서 술 먹으면 팬들이 그래요. 처음에는 존댓말 쓰면서 존중해주죠. 그러다 술이 들어가면 “CF해서 얼마 벌었냐”는 식으로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요. 아, 이 사람이 날 유흥의 대상으로 생각하는구나. 만약 정경화씨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러겠습니까. 같은 문화계에 있으면서 왜 우리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냐는 거죠. 그건 다른 건 필요없다, 우리가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김어준 그런 정답을….(웃음)

최민식 남을 탓할 필요도 없어요. 개개인들이 작품 할 때마다 최선 다해서 하고….

김어준 스크린쿼터 투쟁 얘기를 더 하면, 삭발하고 투쟁하는 모습으로는 일반 시민들한테 사실 별 호응을 못 얻었거든요. 뭐랄까 일반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기저에 없지 않았던 것 같고… 한번 CF에 억씩 받는 사람들의 밥그릇 지키기….

<한겨레21>은 검열을 중단하라?

(사진/<넘버3>)

최민식 배부른 자의 푸념이다….

김어준 그리고 우르르 와서 머리 깎고 울고 소리치고 하다가는 외제차 타고 웃으며 쫙 빠지고, 그런 날만이라도 버스대절할 수도 있잖아, 하여튼 그러는 것 자체가 그냥 자기들끼리의 신파적인 쇼처럼 보였단 말입니다. 잘못 본 겁니까? 변명을 듣고 싶습니다.

최민식 변명할 게 없어요. 제가 일반 관객이라도 욕을 했겠죠. 크게 억울하다든지 그런 느낌은 안 받아요. 우리가 잘못한 부분이 더 많으니까.

김규항 밥그릇 싸움이라는 얘기를 안 들으려면 제 밥그릇이 걸린 일이 아닌 일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중요한데….

최민식 근데 의도적인 게 돼서는 안 될 거 같아요.

김규항 제 얘기는 무슨 노동자·농민 집회에 당장 참여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혜택을 받았다면 기본적인 사회의식은 가지고 있어야 아닌가 하는….

최민식 당연합니다. 배우들 스스로 그걸 느껴서 자발적으로 노력하려는 모습이 중요하겠죠. 그런 양반들이 하나둘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김규항 이야기를 돌려보겠습니다. 제가 <넘버.3> 마동팔 검사의 욕설 섞인 대사를 가리켜 “한국 영화사상 가장 자연스런 씨발놈”이라고 어느 잡지엔가 쓴 적이 있습니다. 그전의 한국영화에서 나오는 욕을 보면 굉장히 부자연스럽거든요. 마치 연극대사처럼 “이 나쁜 놈들”식으로 그러고. 평소 욕을 좀 하는 편인가요. 연기치고는 자연스럽던데.(웃음)

최민식 저도 욕을 즐기는데.(웃음) 사실 “개자식”이랄지 “이놈아” 따위는 죽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방송은 연령구별없이 다 보니까 통제가 심하죠.

김어준 <한겨레21>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욕하는 거 다 잘려요. <한겨레21>은 검열을 즉각 중단하라!(웃음) 욕 한마디로 함축할 수 있는 것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꼭 해보시고 싶었던 욕은 없습니까.

최민식 다 해보고 싶어요. 전 <넘버.3> 할 때 너무너무 통쾌한 거예요. 내가 욕을 이렇게 공식적인 작품에서 하다니. 근데 저는 검찰청 같은 데서 검사를 욕쟁이로 비하시키는 거 아니냐고 항의라도 올 줄 알았는데 정반대대요. 검찰관련 언론기관에서 인터뷰 요청이 온 적이 있는데 “우린 원래 그렇다”는 거예요. 너무 잘 봤다고 격려를 해 주시고….

김규항 한국 검사들의 인간미죠.(웃음)

김어준 이번에 <거짓말>이 상영되는 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처음엔 “한컷이라도 자르면 영화상영 안 하겠다”고 했는데. 물론 영화가 장사라는 측면은 이해하지만 한편으로 섭섭하고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최민식 씁쓸한 얘기죠.

김어준 그분들을 변호하자면….

최민식 이런 영화도 상영이 될 수 있다… 그런 게 하나의 발전과 도약의 계기가 되지 않을지. 물론 어느 작가나 감독도 이곳저곳 잘린 ‘병신’을 내보내고 싶겠어요.

김어준 전 오히려 상징적 의미에서 노컷으로 밀고 나가 상영 자체가 안 됐으면 다음 영화가 더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김규항 끝까지 싸우면 좋지. 하지만 그것도 경제활동인데 그렇게까지 요구할 수는 없지.

김어준 손실된 부분에 대해선 영화인들이 돈 모아서 도와주면 되잖아.(웃음)

최민식 전 우리나라에도 포르노 극장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 중 한명인데, 쓰레기와 보석이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김규항 대중들의 자정능력을 믿어야죠.

최민식 그렇죠. 거리에서 펜트하우스나 플레이보이를 판다고 해도 저 역시 무지하게 사보겠죠.(웃음) 고삐리때 생각하면서. 저도 인터넷으로 영화전문 사이트 찾아보다가 꼭 막판에는 포르노 사이트 한번 보고 나오거든요.(웃음) 그게 사람이잖아요. 그렇다고 푹 빠지진 안잖아요. 물론 청소년들은 당분간 빠지겠죠. 저땐 안 그랬나요. 가방 안에 포르노 잡지 하나는 꼭 있었는데요.

“저는요, 그런 여자가 좋아요”

김규항 대중들을 자꾸 지도해주겠다는 건데 글쎄 지도할 필요가 없거든요. 심지어 노랑머리 물들였다고 방송에도 못 나오게 하는데, 이게 무슨 이조시대도 아니고….

최민식 그래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김규항 전반적으로 그렇죠. 구태의연한 꼴통들은 여전하지만.

최민식 제가 <구로아리랑>으로 영화를 데뷔했는데, 그때 24컷이 잘렸어요. 그것도 아세아극장에서 겨우 일주일 상영하다 내렸지요.

그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해피엔드>와 <쉬리>의 촬영 에피소드에서 시의회에 출마한 전 장인의 선거운동에 뭣모르고 나섰다 깡패에 맞아죽을 뻔했다는 이야기까지. 연기철학과 국민의 정부에 대한 의견도 털어놓았다.(<서울의 달>의 춘섭을 닮은 말투는 어눌했지만 구수했고 솔직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꺼낸 것은 여성관. 그동안 대부분 고개를 주억거리던 김규항과 김어준은 이 대목에서 약간 ‘깨는 표정’으로 자세를 고쳤다. “저는요.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는 여자가 좋아요. 남자는 일하고, 여자는 밥하고 빨래하고…. 태고 때부터 숙명이에요.” 김규항·김어준이 내리는 오늘의 결론, 아니 오늘의 충고. “최민식씨, 웬만하면 말입니다… 그 얘기는 다른 인터뷰에서 하지 마세요. 네?”

●바로잡습니다

지난호(291호) 쾌도난담 중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를 <숏컷>으로 바로잡습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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