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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리오’의 슬픈 악명

(사진/콜롬비아의 청부살인업자 시카리오를 그린 영화 <미래가 없는 로드리고>(1988년, 감독 빅토르 가리비아)의 한 장면. 주인공 한 사람만이 직업배우였던 이 영화에 출연한 나머지 인물들은 영화촬영이 종료된 뒤 모두 거리에서 사망했다)

‘시카리오’(SICARIO)를 아시나요.

콜롬비아는 청부살인업자들의 ‘종주국’이라 할 만하다. 날마다 수십건씩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대부분은 이들 청부살인업자들의 범행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국제적으로도 콜롬비아 출신 청부살인업자들의 악명은 드높다. 시카리오는 바로 콜롬비아에서 이들 살인청부업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원은 지금의 이란지역 근처에서 몽골침략에 맞섰던 ‘암살자교단’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시카리오는 주로 도시 주변 빈민가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불량청소년 집단(반다스 후베닐레스 Bandas Juveniles) 출신들이다. 숫자도 연간 수천명 이상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짐작을 하기는 어렵다. 수백만명에 이르는 빈민가의 청년들이 모두 잠재적 시카리오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경찰에 따르면 시카리오들은 일반적으로 청부인에 대한 신분을 모른 채 브로커를 통해 주문을 받고, 특정인의 암살에 나선다. 물론 검거되면 다행히 사형을 면하더라도 이른바 ‘정글’로 불리우는 콜롬비아의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생존의 경계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거액을 미끼로 한 살인청부는 거절할 수 없는 선택이다. 도시의 참혹한 뒷골목에서 미래를 상실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처절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던 만큼, 살인에 나서는 이들에게 정치적 이념이나 도덕적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메데진카르텔 등 마약조직이 그 활동에 저해가 되는 사회저명인사들을 대량으로 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전성기를 맞았다. 세계 최대의 검은 조직인 마약카르텔들이 이들을 ‘인간병기’로 삼은 것이다. 마약조직은 지금도 시카리오를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 그리고 조직간 ‘전쟁’에 투입하고 있다.

콜롬비아인들이 설명하는 시카리오의 탄생배경은 비극적이다. 1970년대 도시빈민의 해방을 기치로 창설된 도시게릴라 단체 ‘M19’는 빈민 청소년들에게 “인간답게 살자”며 군사훈련을 시켰다. 빈민촌의 상당수 청년들이 무기를 다루는 법이나, 살상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한 것도 이 때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M19가 무장투쟁 노선을 포기하고 제도정치권으로 들어가자 “인간해방을 꿈꾸던” 빈민 청년들은 구심점을 잃기 시작했다. 이념교육이 중단된 청년들에게 빈곤과 증오, 그리고 군사적 노하우만이 남았다. 이 틈을 이용한 게 바로 당시 세계 최대 범죄조직으로 떠오르던 마약카르텔이었다.

시카리오의 탄생에서 읽히는 이런 이중성은 시카리오의 문화에서도 드러난다. 콜롬비아인들에 따르면 시카리오들은 범행에 나서기 전에 꼭 성모마리아나 어린 예수 등을 향해 “실패하지 않고 죽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애절한(?) 기도를 올린다. 아무런 원한이 없는 이를 잔혹하게 살해하며 행하는 파괴된 인성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그렇지만, 시카리오들의 불행한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상당수는 범행 뒤,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청부인에 의해 다시 살해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콜롬비아의 가난한 청년들에게는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오늘도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한겨레21 1999년 10월 21일 제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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