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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와 상징을 구분하자
단군은 역사와 인식 두 형태로 존재… 불순한 목적의 조작 경계해야

인터뷰/노태돈 서울대 교수

최근의 단군 논의에 대한 학계의 시각을 들어보기 위해 한국 고대사 전공자인 노태돈 서울대 교수를 만났다. 그는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조사 연구에 충분한 투자를 해야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먼저 단군 논의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달라.

=단군과 고조선은 고대에 존재했고 그에 대한 의식이 이어져왔지만, 역사적으로 단군을 건국 시조로 인식한 것은 고려 후기부터다. 몽골과 30년에 걸친 항쟁을 벌이면서 고려인들은 삼국 각각의 유민의식을 넘어 “삼국 모두가 고조선에서 나온 동족의 역사체”라는 의식의 상징으로 단군을 강조했다. 이성계가 ‘조선’이란 국호를 택한 것도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역사의식의 성장과 연관이 있다. 한말 일제하 민족주의자들이 단군을 강조한 것도 이를 통해 민족을 결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람직한 단군 논의는 어떠해야 하는가.

=현대에서 단군에 대한 논의는 합리성과 객관성의 토대 위에서 ‘민주적 민족공동체’의 방향성에 맞는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이런 방향성과 맞지 않는 논의, 다시 말해 국가주의적 전체주의적 통합력의 강화를 위한 상징조작으로서 단군을 내세우는 일 따위는 역사의 반동밖에 안 된다.

-최근의 단군 논의 가운데 “신화와 역사를 혼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 점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사실로서의 단군’과 ‘인식으로서의 단군’이 있다. 둘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이 두 가지를 다 봐야 한다. 역사적 사실로서 고조선을 논리적으로 규명해야 하고, 또 역사 속에서 우리 선조들의 단군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도 봐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면 문제가 생긴다.

-최근 벌어진 단군상 훼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종교적 상징이 아닌 민족적 상징으로서 세운 단군상을 훼손한 것은 유감스런 사태다. 현대는 종교 다원주의 사회다. 다른 종교에 대해 포용적이고 우호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더구나 신앙의 대상이 아닌 민족의 상징에 대해 지나친 거부반응을 낼 필요는 없다.

-북한에서는 지난 93년 단군릉을 발굴·복원하는 등 이른바 ‘단군 붐’이 일고 있다.

=중국에도 산시성(陝西省)에 삼황오제 전설에 나오는 황제(黃帝)의 능이 있다. 황제는 한족의 상징이다. 황제릉에는 중국 공산당의 주요 간부들도 참배하고 휘호까지 써놓았다. 최근에는 산시성에 염제의 능을 복원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민족은 남아 있으므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오래 전부터 단군릉이라 불려오던 무덤을 복원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복원한 단군릉을 역사적 사실로서 강조하고 역사를 재구성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현지 답사를 다녀오지 않은 상태에서 조심스럽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해볼 때 북한이 발굴한 것은 고구려시대의 고분이다. 무덤 양식으로 볼 때 빨라야 4세기 이후의 것이라고 보인다. 북한은 합리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논리로 학문 체계 자체를 뒤흔들어놓았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의 단군 논의와 관련해 역사 연구자로서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교육 당국자에게 말하고 싶다. 단군과 고조선사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단군 논의는 10년을 주기로 되풀이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나고 있다. 논의의 심화를 위해서는 고대사에 대한 연구 자체가 진전되어야 한다. 10년 뒤에 다시 같은 내용을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80년대 말까지는 고조선의 무대였던 북한과 만주에 대한 답사와 자료 입수가 어려워 연구가 진전될 수 없었다. 오늘날은 신자유주의 경쟁원리를 대학까지 도입해 인문학을 말살하는 교육정책 때문에 고조선 연구는 물론 한국학 연구 전체가 황폐화하고 있다.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인식의 심화를 위해서는 이 방면 연구 조사 인력을 키우고 투자를 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10년 뒤에 또다시 같은 논쟁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수 기자

leess@mail.hani.co.kr

한겨레21 1999년 09월 16일 제2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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