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Ⅰ [an error occurred while processing this directive]
 

영국·일본인이 달래준 상처 쿠앙남·쿠앙응아이에서의 학살- 여성들이 부르는 슬픈 자장가를 아는가

(사진/“하늘을 찌르는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36명이 학살당했던 쭈옹딘 폭탄구덩이 자리에는 증오비가 서 있다.)

아… 어 으 어….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적들이 서른여섯명을 죽여 폭탄구덩이(시신이) 그득 쌓였구나.

아… 어 으 어….

오후에 엄마는 아가를 재우려 자장가를 부른다.

아가야 쭈옹딘 폭탄구덩이를 기억하거라…. (하략)

그들의 한은 아가의 꿈결에 새겨야 할 만큼 깊었던 것일까. 빈호아 양민학살 사건 이후로 쿠앙응아이 성, 빈선 현, 빈호아 사의 여성들 사이에는 이런 내용의 자장가가 불렸다. 쭈옹딘 폭탄구덩이(1965년 8월 반전투 때 미군의 폭탄이 떨어진 자리)는 빈호아 사 인민위원회 옆, 키낮은 관목 몇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는 도오 언덕 풀숲 사이에 황토흙이 드러난 채로 있었다. 폭탄구덩이에는 당시 희생된 서른여섯구의 시신이 그대로 묻혀 있다. 봉분도 묘비도 없어 빈호아 사 인민위원회 부주석 토응옥리(46)의 안내가 없었다면 무심코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다만 폭탄구덩이 위쪽에 사 인민위원회에서 세운 빈호아 위령비가 서 있었다. 이 비에는 ‘하늘에 가닿을 높은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는 제목 아래 쭈옹딘 폭탄구덩이에서 일어났던 학살사건을 비롯해 빈호아 사 9개 마을에서 일어났던 한국군의 양민학살에 대한 내용이 도표와 함께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학살은 한국인이 저질러놓고…

(사진/한국군 양민학살이 있은 지 일주일 만에 커우마을에 돌아온 팜쭉은 한국군이 땅에 묻어놓은 발목지뢰를 밟아 하반신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이 위령비 왼편으로 언덕 꼭대기에 영국에서 세워준 위령비가 또 하나 있다. 이 비에는 빈호아 양민학살사건으로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430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94년에 영국인 부인 한분이 이 지역을 방문했지요. 그는 미군의 베트남 양민학살 현장인 밀라이 박물관에서 우연히 한국군의 양민학살 자료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학살사건이 있다는 데 충격을 받은 그 부인은 그 길로 이곳에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당시 빈호아 사 인민위원회에서는 그 부인에게 한국군 양민학살에 관한 모든 자료를 건네주었고, 이 마을의 학살현장을 안내했다. 96년 초, 그 부인은 다른 2명의 영국인과 함께 다시 이 지역을 찾아와 빈호아 양민학살에 대한 조사작업을 하고, 영국에 돌아가서는 위령비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펼쳤다. 96년 말, 그가 빈호아 사에 4억동(4천만원)을 지원하고, 쿠앙응아이성에서 2억동을 추가로 지원, 모두 6억동의 재원이 마련됐다. 98년 베트남을 다시 방문한 영국인 부인은 위령비 건립 사실을 확인하고 빈호아 사에 계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95년에는 또 일본의 피스보트(Peace Boat: ‘과거의 전쟁을 응시하고 미래의 평화를 만들자’는 취지 아래 결성된 시민단체)가 이 지역을 방문해 한국군 양민학살 현장을 조사했지요. 그 다음해에 40억동의 재원을 지원해 2층 건물 16개 반 규모의 초등학교를 지어주었어요.” 아가의 숨결에까지 한을 새기는 자장가를 부르게 한 것은 한국인이었지만, 바다 건너 그 자장가 소리를 먼저 듣고 달려온 이들은 엉뚱하게도 영국인, 일본인이었다. 빈호아에서 다시금 아름다운 가사의 자장가가 불리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닐까.

빈호아에는 온 마을이 다 한국군의 흔적이다. 도오 언덕의 위령비말고도 마을에는 3개의 작은 비가 더 있었고, 9개의 장소에 학살의 원형이 보존돼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두 호의적이다. 부주석이 오토바이 뒤에 낯선 외국처녀를 매달고 다니니 마을 사람들이 호들갑스럽게 웃어댄다. 부주석은 얼굴이 빨개지고. 멀리 논에 엎드려 일하는 아줌마들도 잠시 일손을 놓고 손 흔드는 것을 잊지 않는다.

커우마을 우물가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도안응이아(34)의 집을 찾았다. 그의 부인이, 앞이 보이지 않는 그의 두손을 잡고 그를 거실로 이끈다. “나는 당시 겨우 태어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는 아기여서 아무것도 몰라요. 고아가 된 나를 데려다 키워주신 할머니에게 당시의 얘기를 들었지요. 어머니는 피가 낭자한 우물가에 쓰러져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어머니를 들어올리자 그 밑에 내가 꿈틀꿈틀 살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어머니의 배 밑에 깔려 살아났지만, 빗물에 씻긴 탄피의 화약액이 두눈으로 흘러들어가 장님이 되고 말았다.

산 채로 불구덩이에… 임신부도 안 가리고

커우마을의 우물은 군데군데가 갈라지고 총탄구멍이 뚫려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차갑고 맑은 샘물을 길어올리고 있었다. 우물을 마주하고 이 우물가에서 학살당한 131명을 기리는 작은 비가 서 있다. “1966년 12월3일(음력 10.22) 빈호아 사, 롱빈마을의 쩌우레 언덕에 주둔하고 있던 청룡부대 1개 대대가 이곳 9개 마을에서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3일에서 6일까지 모두 430명이 집단학살을 당했지요. 응옥흥마을에서는 80살 노인인 후인의 목을 잘라서 논에 걸어놓기도 했어요. 희생자들 중에는 임산부도 7명이 있었고, 2명의 여성이 강간당하기도 했지요. 또 2명이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져졌고, 1명은 배가 갈라져 창자가 꺼내졌습니다.” 부주석의 설명이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온 동네 사람들이 이 우물가로 총집합을 한 듯했다. 그중에는 지뢰에 하반신이 송두리째 날아간 아저씨의 모습도 보이고,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어린 동생을 업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한 아줌마는 엉덩이에서 발끝까지 살이 오그라들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은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상처에서는 진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 마을엔 병원도 없고 약도 없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1도화상에 바르는 연고라도 주는 것밖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제법 평평하고 넓은 사각의 밑단 위에 위령비가 서 있고 나무 그늘이 서늘하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마치 정자라도 되는 양 비를 가운데로 하고 빙 둘러앉았다. 우물가로 노을이 찾아들었다. 노을에 잠긴 마을은 아름다웠고, 노을에 붉게 물든 사람들의 얼굴은 평화로왔다. 그러나 커우-안마을의 학살을 담은 시 속에 노을은 핏빛이었다.

누가 그들에게 총을 쏘게 했는가

남편은 살고, 아내와 자식은 이 세상 이별하였구나…(중략)

갓난아이마저 죽여야 했을까

입은 아직도 엄마 젖을 무는데, 떠나야 하는구나…(중략)

이제 수많은 날들과의 이별

황혼이 묘지를 감싸고 금빛 수를 놓는구나

묘지에 원한의 향을 꽂는다

그리워 피워 올린 향불도 잦아든다

죽어 천추를 편히 쉬소서

살아 피로써 그 원한 씻으리

병오년(1966) 10월25일, 작가 응웬니엠

쿠앙남 성의 투이보 촌에서 만난 응웬티니(85) 할머니는 한국군의 총에 맞아 턱 아랫부분과 혀의 절반이 날아가 있었다. 할머니는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때면 자리에 누워 입 안으로 부어넣어야만 한다. 인터뷰 내내 할머니의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투이보 학살사건 당시 한국군에 의해 딸과 사위, 세명의 외손주를 잃었고, 나머지 자식들도 전쟁통에 모두 잃어버려 할머니는 돌보는 이도 없이 외톨이로 혼자 살고 있다. “눈이 안 보여서 매일 밥이 설어….” 전쟁은 이 할머니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학살은 이곳 베트남 사람들에게 끝내 극복할 수 없는 상처, 죽을 때까지 끌고 가야 하는 상실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총을 쏜 한국군도 희생자

어느 누구도 자기 나라 군대를 남의 나라 식민지 용병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어느 누구도 자기 나라 군인을 학살자라 이름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어느 군인도 눈앞의 어린아이, 임산부, 노인들을 향해 총을 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전쟁의 광기에 휩쓸려 총을 쏘았다 하더라도 그를 쳐다보던 마지막 눈빛, 그 처절한 비명은 꿈속에서까지 그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결국 죽어 이곳에 묻힌 이들도 희생자지만 그날 그곳에서 총을 쏘았던 군인들 역시 희생자가 아닐까. 이제 50이 넘어 60고개를 향해 갈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

그리하여 삼십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물어야 하지 않을까. 누가 그 꽃다운 젊음들을 죽음의 땅으로 몰았나. 누가 그들에게 임산부, 노인, 갓난아이를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을 했나.

쿠앙남·쿠앙응아이=글·사진 구수정 통신원

chaovietnam@hotmail.com

한겨레21 1999년 09월 02일 제2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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