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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 신화를 지운다
영국 간호사들 “우리의 모델이 아니다” 선언… 재평가 논란 불붙어

(사진/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등잔을 든 여인.’

크리미아 전쟁터의 부상병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춥고 어두운 병상에서 홀로 신음하며 죽어가던 병사들에게 등잔불을 높이 들고 이마에 손을 얹어주던 나이팅게일은 성녀와 다름없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그의 등잔불빛은 세계 간호계를 비추는 횃불이 돼왔다.

하지만 요즘 간호계의 움직임은 그 등불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후배 간호사들이 더이상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을 자신들의 모델로 삼지 않겠다고 결의한 것이다. 백의의 천사의 원형이며 현대간호학의 창시자로 영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고한 위치를 지켜온 나이팅게일에 대한 논란에 불이 붙었다.

“너무 복종적인 간호관 확립”

(사진/메리 시콜. 나이팅게일 못지 않게 활약한 간호사다.)

지난 4월 말 영국 브라이튼에서 열린 유니슨 총회에 참가한 회원들은 100년도 넘은 나이팅게일 숭상의 전통을 깨뜨리는 동의안에 압도적인 표를 던졌다. 이들은 나이팅게일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5월12일에 치르는 ‘국제 간호사의 날’도 다른 날을 택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유니슨은 25만명의 간호사를 포함해 총 46만명의 의료업무종사자들이 참여하는 영국 내 최대규모의 공공분야 노동조합이다.

이들은 나이팅게일식 간호의 기본 개념이 부정적이고 퇴행적인 요소를 대변하고 있다며 이같은 이미지는 진작에 내버려야 했던 것이라고 천명했다. 총회에 참석한 런던의 간호사 웬디 윌러는 “이제 나이팅게일 신화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그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리즈에서 온 마리 이들은 “역설적으로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를 너무나 홀대했다”고 비판했다.

유니슨이 나이팅게일을 현대 간호전문직의 창시자로 더이상 대접할 수 없다고 내건 두 가지 이유 중 첫째는 의사 앞에 너무 복종적인 간호관을 확립시켰고 동료들에게는 너무 가혹하게 했다는 것이다. 나이팅게일에 의해 주창된 간호업무의 개념이 오늘날까지 의료분야에서 의사들의 독점적 지위를 지속시켰고 간호사들에게 독립적인 언행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그들의 임금을 최저수준으로 묶어두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영국 간호사들의 이런 결론은 21세기를 앞두고 그간 쌓인 문제를 선명하게 매듭짓겠다는 태도로 해석된다. 간호사 고유업무의 독립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그의 간호철학이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현대 간호사들에게 전혀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낮은 보수와 과도한 업무로 최근 간호사직 기피 현상이 일고 있는데다 간호사에 대한 새로운 위상을 세울 필요가 있는 점도 이같은 움직임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수정주의적 재해석에도 불구하고 나이팅게일이 간호사 개념을 일신하는 데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영국 더비셔 대지주의 딸로 태어나 간호사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집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야 했을 정도로 당시 사회분위기는 간호사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사람들은 간호사란 도대체 배운 여성이나 양가집 딸이 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시대의 간호는 열악한 환경에 과로와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최말단의 기피직종이었다. 간호업무가 전문적인 지식이나 훈련을 필요로 한다고 여기지 않았고 영국 내에서는 간호를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없었다.

망각의 그늘에 묻힌 간호사들

나이팅게일도 결국 독일에 가서야 공부할 수 있었다. 서른살이 넘어서야 겨우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었던 나이팅게일은 런던의 한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조금씩 명성을 얻었다. 그러던 중 1854년 크리미아 전쟁이 발발했고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부상병들을 구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그에게 협조를 요청하게 된다. 드디어 그가 38명의 간호단을 이끌고 전장에 입성하면서 마침내 전문간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한 것이다. 간호단이 오기 전 부상병 1천명 중 사망자수가 거의 절반에 이르던 것이 스무명 수준으로 떨어진 일은 놀라운 실적이었다. 스쿠타리 군병원에서 나이팅게일은 세상사람들에게 간호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강력한 규율과 철저한 청결원칙은 현대간호학의 초석으로 자리잡았다.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매일 밤 병상을 둘러보는 나이팅게일의 헌신적인 봉사 소식이 알려지면서 영국 전역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전 뒤 영국으로 돌아온 나이팅게일은 전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 국민들이 보답하는 마음으로 엄청난 성금을 모아 주자 나이팅게일은 최초의 간호 교육기관인 성토머스 간호학교를 세워 간호학이 제대로 자리잡는 데 크나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크리미아 전쟁에서 빛을 발한 간호사가 나이팅게일 한사람만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점이 간호분야에서 다른 선각자들의 명예까지 독점했다는 비판으로 후배들이 나이팅게일을 재평가하게 만든 두번째 이유다. 전쟁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한 다른 인물들을 제치고 유독 나이팅게일만이 성녀대접을 받은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크리미아에서 나이팅게일 못지 않은 활약상을 보였던 조아나 브리지먼 수녀나 메어리 시콜 같은 인물들은 오랫동안 망각의 그늘에 묻혀버렸다. 특히 유니슨에서 재조명 사업을 벌이는 메어리 시콜(1805∼81)은 아주 뛰어난 간호사였다. 자메이카 태생으로 흑인 어머니와 스코틀랜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시콜은 어머니로부터 전통적 열대치료법을 배워 일찍이 여의사 선생님으로 통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나이팅게일이 이끄는 간호단에 들어가기 위해 영국으로 왔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전쟁터로 달려갔다. 혼자 힘으로 치료소와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용감하게 전쟁터를 누비며 부상병을 치료하고 음식을 날라다주는 등 헌신적인 구호활동을 전개했다.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로하는 그의 모습이 나이팅게일에 뒤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오늘날의 간호사들은 믿고 있다. 그러나 국민적 영웅대접을 받은 나이팅게일에 비해 시콜을 기다린 것은 가난뿐이었다. 시콜은 그를 기억하는 몇몇 병사들의 도움으로 여생을 보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나이팅게일 이전에 간호업무의 중요성을 설파한 인물로는 엘리자베스 프라이(1780∼1845)도 들 수 있다. 감옥개혁운동가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여성은 사재를 털어 간호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지나친 미화, 빅토리아시대의 소산

나이팅게일 신화는 당시 빅토리아시대의 소산이라는 지적도 근거있게 들린다. 제국주의가 한창 성하고 산업혁명으로 물질주의가 만연한 시대 분위기에 무언가 휴머니즘의 표상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나이팅게일은 그 이상형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백인이며 프로테스탄트였고 정통 잉글리시인데다 유복한 집안 출신인 여성이 사회적으로 홀대받는 간호직을 맡아 전쟁터까지 달려갔으니 영웅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나이팅게일 연구가들 사이에는 그의 업적이 지나치게 미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가 일했던 병원에서 치료받아 회생한 병사들의 숫자보다 사망자들의 수가 더 많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는가 하면, 나이팅게일이 쇠약해진 건강 때문에 크리미아에서 돌아온 뒤부터는 사실상 일선에서 물러나 지냈다는 사실도 거론된다.

그러나 나이팅게일 신화 지우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 벌써 왕립간호협회는 유니슨의 결정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식의 재해석이 자칫 나이팅게일의 진면모까지 과소평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보인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의 업적과 신화를 구별하자는 움직임과, 다른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내려야 한다는 주장만큼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너무 과분한, 너무나 과분한 상.” 죽기 3년 전 왕실의 공로훈장을 받으며 나이팅게일이 남긴 말이다. 등불을 든 여인은 이미 그때 간호사 동료들에게 자신의 공을 돌리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런던=권은정 통신원

hyojecho01@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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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9년 05월 20일 제2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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