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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따이한을 팔지 말라
정해복지 등의 정직하지 못한 모금운동… 3세와 신종2세 문제 대안 세울 때

(사진/한·베트남 직업훈련원의 교사와 학생들.)

사랑의 손길.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라이따이한에 대한 사랑의 손길’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한때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12월19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베·한 정해기술학교 운영기금 마련 자선 디너쇼 및 98 송년의 밤’도 그러한 자리였다. 아직도 라이따이한에 대한 ‘자선의 손길’이 식지 않았음을 웅변하는 자리 같았다. 이날 행사를 알리는 팸플릿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전쟁의 땅에 남겨졌던 한국인2세 ‘라이따이한’. 이제 그들은 베트남사회의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일어서고자 합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사랑의 손길을 내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아나운서 김동건씨가 진행한 이날 디너쇼에선 3천만원의 후원금이 걷혔다.

“라이따이한? 한명도 없다”

사단법인 정해복지(이사장 이충범 변호사)는 지난 91년부터 지금까지 베트남 한인2세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해왔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호치민 인근 투덕에 대지 6010평, 건평 1310평 규모의 베·한 정해기술학교를 세워 후원해왔다. 베트남의 한인2세와 전쟁고아들의 자립기반을 마련해준다는 것이 설립취지였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투자액이 11억원을 넘는다. 그렇다면 지금 이 학교엔 몇명의 라이따이한들이 있을까. 정해복지 사무총장 심양식(44·코그린 대표)씨는 “전체 학생 중 20∼30명쯤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말일까?

지난 5월3일 투덕의 베·한 정해기술학교를 직접 찾았다. 교장 응엔 토안(48)의 말은 달랐다. “라이따이한? 한명도 없다.” 이 학교는 97년 4월부터 교육을 시작했다. “한인2세를 돕는다”며 언론지상에 이충범 이사장 인터뷰가 잇따라 나온 것은 92년부터였지만 첫 졸업생은 지난해 8월에서야 나왔다. 그러나 졸업생 중에도 라이따이한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라이따이한은 이 학교를 다닐 수가 없다. 베트남 전쟁 종전이 75년이었음을 상기하면, 그해 태어났다 해도 라이따이한의 나이는 24살. 지금은 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때지, 기술학교를 다닐 때가 아닌 것이다. 응엔 토안 교장의 말도 그랬다. “맨 처음 라이따이한 15명이 입학했다. 그런데 수업을 못했다. 일단 나이가 너무 많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공부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한국에 다른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였다. 또 한가지는 교과과정을 따라올 만한 기초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라이따이한을 돕겠다고 걷은 11억원이 넘는 돈 가운데 실제로 라이따이한을 위해 쓰인 돈은 거의 없는 셈이다.

베·한 정해기술학교와 함께 투덕에 위치한 한·베트남 직업훈련원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 학교의 개원식과 2기 입소식은 유달리 떠들썩하게 열렸다. 95년 9월 <주간조선>은 이 학교의 2기 입소식을 ‘라이따이한의 새 출발’이라는 제목으로 전하고 있다. 당시 이 학교를 후원하는 한·베트남 청소년문화교류후원회 명예회장이었던 최형우 의원은 화려한 후원인사들을 거느리고 이 행사장을 찾았다. <주간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2기 입소식과 교육자재설비를 위해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75만달러를 지원했다”고 한다. 그럼 이 학교 덕택에 얼마나 많은 라이따이한들이 혜택을 보았을까. 결론은 역시 “없다”.

지금 한·베트남 직업훈련원엔 라이따이한이 2명 있다. 그런데 서류상으로만 존재한다. 이유는 베·한 정해기술학교와 똑같다. 이 학교는 97년부터 98년 8월까지 1년 동안 아예 문을 닫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호치민대 산하로 재편성이 된 상태다. 한·베트남 청소년문화교류후원회의 지원도 완전히 끊겼다. 당시 공동회장이었던 오태순 신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는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느냐”며 의아해했다. “우리는 한인2세 숫자 파악 못했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다. 난 아는 게 없을뿐더러, 예전에 손을 끊었다.” 한·베트남 직업훈련원 건물엔 여전히 한글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교장 천 응옥 하오(43)는 “이제 이 학교는 한국과 관계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다 사기 아닙니까?

왜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일까. 라이따이한을 돕는다는 거창한 명분을 들어 국내기업들로부터 거액의 장비지원과 모금을 받고, 수천명 후원회원들의 쌈짓돈을 모았다. 그런데 교육받은 라이따이한은 없는 것이다.

기자는 호치민 주재 한국영사관을 찾았다. 관계자에게 조금 심하게 물었다. “이거 다 결국 사기 아닙니까?” “라이따이한 돕는다며 걷은 수십억원 중 제대로 쓰인 건 10원도 없는 셈이잖아요?” 연거푸 이어진 질문에 영사관 관계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단지 “문제가 많지요”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을 뿐이다. 여기엔 교통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영사관의 책임도 크다.

91년 휴멘직업기술학교를 설립해 1300여명의 라이따이한 졸업생을 배출한 휴멘직업기술학교 김영관 목사는 애초 두 학교의 출발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교육대상 연령이 되는 대부분의 한인2세들은 이미 그가 세운 휴멘직업기술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먼저 한인2세의 숫자파악을 철저히 했어야죠. 있지도 않은 한인2세들을 교육한다고 하니, 그게 되겠습니까?” 그가 파악한 한인2세는 1500여명. 아무리 많아도 3천명은 넘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자료도 없이 1만5천∼3만명 수준이라고 허풍을 떨며 우후죽순처럼 모금단체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두 학교의 후원단체들은 출발 때부터 “한인2세만을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한국이 베트남에 진 빚을 감안하면, 베트남의 전쟁고아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교육기회를 넓혀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팸플릿이나 각종 홍보물엔 이런 이야기들이 정직하게 쓰여 있지 않았다. 늘 메인카피는 ‘라이따이한을 위해서’였다.

이와 함께 정치적 오해도 살 만했다. 한·베트남 직업훈련원을 돕는 한·베트남 청소년문화교류후원회의 명예회장은 최형우 의원이었다. 베·한 정해기술학교를 돕는 사단법인 정해복지의 이사장은 김현철씨의 친구이며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이었던 이충범 변호사였다. 둘 다 김영삼 정권 시절 잘 나가는 실력자였다. 이들이 현지 한인사회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이나 장기 비전도 없이 정치적이고 즉흥적으로 일을 밀어붙였다는 시각은 그래서 존재한다.

“관심을 한인3세와 90년대 이후 생겨난 신종 한인2세로 돌려야 합니다.” 김영관 목사는 이제 라이따이한 문제의 좌표를 결산할 때가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탁아방, 자모 프로그램 등 현실적인 대안들을 강구할 때라고 지적했다. ‘라이따이한’은 제발 그만 우려먹자는 것이다.

호치민·투덕=글·사진 고경태 기자

k21@ma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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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9년 05월 20일 제2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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