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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모 주인은 누구냐"
초기 사진에 보인 철모 사라져 국방부 “이니셜 확인 요구” 거부 현장에 있던 전역병 증언도 의혹 증폭

(사진/김훈 중위 사망 현장에서 사라진 철모. 국방부는 케모밴드 부분을 확대해 철모가 누구 것인지 밝혀내자는 유족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여부를 놓고 1년 이상 논란을 거듭해온 김훈 중위 사망사건(98년 2월24일 발생)이 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철모’와 관련해 중대한 증언이 잇따라 나옴에 따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특히 증언자들은 ‘사라진 철모’에 대해 국방부의 발표를 정면으로 뒤집고 있어 이에 대한 국방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미 군의관은 철모를 쓰지 않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했던 이아무개(당시 병장·98년8월 전역)씨는 김훈 중위 사망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가운데 하나다. 의무병으로 사건현장에 출동했고, 시신 검안 과정에 함께 했기에 당시 상황에 대한 기억은 누구보다 생생하다. 그래서 ‘사라진 철모’의 주인이 미군의관이라는 최근 국방부의 발표를 더더욱 인정할 수 없기에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나섰다.

‘철모 의혹’은 지난 4월 초 불거졌다. 최초로 현장을 찍은 미군정보하사의 사진에는 나타난 철모가 3시간 정도 뒤에 찍힌 미육군범죄수사대(CID)의 똑같은 현장 사진에서는 사라진 것이다. 이를 확인한 천주교인권위와 국방위 ‘김훈 중위 사망 진상파악 소위’는 “이는 범인이 범행에 사용한 철모를 떨어뜨렸다가 되주워간 것으로, 타살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라며 “철모 사진의 필름에 대한 정밀 확대분석을 통해 철모의 야광띠에 희미하게 쓰여 있는 이름을 확인해 주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지난 4월14일 “문제의 철모는 당시 김 중위를 최초로 검안했던 미군의관 아리스 대위의 것”이라며 “아리스 대위가 시신을 살펴보기 위해 잠시 벗어둔 사이 미군 하사의 사진에 찍혔고, 잠시 뒤 다시 찾아 썼기 때문에 CID의 사진에서는 없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씨는 4월30일 <한겨레21>과 만나 “미군의관 아리스 대위는 사건 조사 당시 철모를 쓰고 있지 않았다”며 “이러한 사실은 나의 기억뿐 아니라 당시 여러 정황으로도 증명된다”고 밝혔다.

천 국방의 "그때그때 철모지급"은 어불성설

“그날 오후께 느닷없는 비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훈련비상이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일단 철모와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소총을 둘러멘 뒤 병원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집합장소에 나타난 미군의관 아리스 대위의 차림을 보고는 의아했다. 아리스 대위는 철모는 물론 방탄조끼도 입지 않았다. 캡(작업모)만 쓰고 있었다. 곧이어 아리스 대위는 ‘군장은 필요없으니 해체하라’고 말했다. ‘비상 상황이 이미 끝난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철모와 방탄조끼를 벗고 아리스 대위와 함께 김 중위가 사망한 벙커로 이동했다.” 의무병들에게 군장을 해체하라고 지시한 지휘관이 철모를 쓰고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는 게 이씨의 증언이다. 이씨는 이어 “그뒤 벙커에서는 물론 김 중위의 시신을 싣고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아리스 대위가 철모를 쓰고 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철모와 관련해 당시 사고 벙커 앞을 지키고 있던 소대원 김아무개(당시 병장·98년8월 전역)씨의 증언도 이씨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김씨는 김 중위 시신 발견 뒤 현장에 도착한 네번째 사병이다. 당시 김씨는 부소대장인 김영훈 중사의 지시로 벙커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다.

“비상사이렌을 듣고 철모를 쓴 뒤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현장도착 뒤 곧바로 비상은 해제됐다. 벙커에 처음 도착한 대대장 로펜버그는 철모가 아닌 캡을 쓰고 왔다. 그뒤로 중대장과 미군정보장교, 군의관 등이 현장을 찾았지만 어느 누구도 철모를 쓰고 있지 않았다.” 김씨는 당시 현장에서는 자신만이 철모를 쓰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동안 국방부는 철모의 주인이 아리스 대위라는 근거로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대대장 운전병 홀데리스에 대한 CID의 조서를 제시했다. 이 조서에 따르면 홀데리스는 사건 당일 아리스로부터 “내 철모를 찾아오라”는 지시를 받고 벙커로 올라갔으나 발견하지 못해 “없다”고 아리스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10분쯤 뒤 아리스가 철모를 쓰고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CID의 조사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미정보장교 클라크 대위와 최초 현장 사진을 찍은 포터 하사 등의 조서에서 아리스의 철모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아리스는 포터보다 뒤늦게 도착한 것으로 돼 있다. 설령 아리스가 철모를 쓰고 왔다고 해도 포터의 사진에 찍힐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미군들의 증언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천용택 장관의 답변 가운데 “미군부대에서는 훈련이나 비상시 그때그때 철모를 지급하기 때문에 한국군과 미군의 철모가 섞일 수 있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이씨와 김씨 두 사람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미군의 경우 철모를 포함한 개인 장비는 본인의 책임하에 있다. 만약 없어지거나 훼손됐을 경우 자기 돈을 들여서 새로 장만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는 철저하다. 어떻게 그런 답변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어 이씨는 “경비대대에서 복무하는 동안 그런 식의 철모 지급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혹시나 해서 이리저리 다시 알아봤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천 장관의 이런 답변은 국방부가 철모 사진의 필름을 확대분석했을 때 철모에 아리스 대위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와도 별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뜻이어서 그 진위여부 파악은 매우 중요하다.

천주교인권위도 철모와 관련해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 속 철모의 케모밴드(철모에 위장포를 조여주는 고무줄) 부분이 심하게 뒤틀려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인권위 고상만 간사는 “사진 속의 미군 철모는 위장포를 조여주는 케모밴드가 위쪽으로 올라간 채 오른쪽으로 상당히 돌아가 있는 상태”라며 “이는 철모의 주인이 일부러 케모밴드를 움직여 놓지 않았다면, 누군가 철모에 강한 충격을 줬기 때문에 나타난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군 복무 시절 사진 속의 것과 똑같은 철모를 썼던 이씨 등 판문점 경비대대 전역병들에게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철모에는 야간이동시 뒷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기 위해 뒤편 정중앙에 두개의 야광띠를 부착하는데, 바로 케모밴드에 실로 꿰매 고정시킨다. 따라서 케모밴드는 야광띠의 정중앙을 유지하기 위해 큰 신축성을 갖는 게 일반적이어서 일부러 뒤틀려놓지 않고서는 사진의 모습처럼 될 수 없다.”

국방부 특조단 해체 의혹 증폭

이렇듯 국방부의 조사 결과를 뒤집는 증언이 잇따라 나오면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지만, 국방부쪽의 공식답변은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4월29일 국방부가 특조단을 해체해버렸기 때문이다.

고 간사는 “그동안의 군 조사가 ‘자살’을 먼저 결론짓고, 이에 끼어맞추는 식으로 진행됐다는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국방부는 모든 의혹에 대한 해명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미군쪽에도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곤 기자

csk@ma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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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9년 05월 13일 제2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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