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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명태가 사람 잡네"
'폐허가 된 최대어장' 거진항 어민들의 비극… 생태찌개를 찾지 말라

(사진/ 명태 흉년속에 어민들이 출어를 안 나가면서 거진항은 수많은 배들이 묶여 있다.)

“명태 이야기는 하지도 마시오. 명태가 금태요. 명태가 하도 안 나니까, 오징어잡이 배만 들끓어요. 신정 지나고선 명태라고는 구경도 못 했어요.”

지난 1월13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ㅁ해물탕집. 주인 아주머니는 댓바람부터 명태 타령을 했다. 이 집은 본디 생태탕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주머니가 명태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명태는 겨울철, 아니 일년 내내 거진읍 전체의 경제를 좌우한다. 그러니 명태가 잡히지 않으면 덩달아 다른 장사가 안된다. 못생기고 값이 싸지만 알은 먹음직한 도치 알탕을 내놓은 여주인은 이야기하기도 귀찮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어민 굶어죽었다” 소문에 진상조사도

(사진/ “배탄 지 30년 만에 이렇게 명태씨가 마른 꼴은 처음 본다”고 푸념하는 명태잡이배 선장 김재수씨.)

거진수협에서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조한기(44) 지도과장은 한마디로 “한창 질펀하고 북적거려야 할 공판장에서 먼지가 난다”고 표현했다. 명태 최성어기인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명태 씨가 마른 것 같다고도 했다. “거진은 이제 재해지역이나 다름없어요. 거진 사람 절반이 어민이고, 나머지 절반은 거기에 기대어 삽니다. 그러니 어렵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고까.” 거진수협에서는 우선 이달 안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30집에 쌀 1포와 라면 1상자씩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읍에서도 나름대로 주민 생계 지원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이것으로 상황이 호전되기는 힘든 형편이다. 거진읍은 지난해 말 자체 조사를 통해 거진읍의 어가 642호, 2238명 가운데 300여호, 1200여명이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 중엔 극빈자인 생활보호대상자도 35호 101명에 이른다. 며칠 전에는 어떤 이가 굶어죽었다는 소문이 나 읍사무소에서 진상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2월 말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생계곤란자의 숫자는 470여호, 1900여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원일호 김재수(47) 선장이 이날 오후 수협 조한기 과장을 찾은 이유는 대출을 받기 위해서였다. 명태가 잡히지 않아 수입이라고는 없지만 그래도 선원들을 굶길 수는 노릇이었다. 그는 “배탄 지 30년 만에 이런 꼴은 처음 본다”고 푸념했다. “어제도 나갔어요. 20일 동안 놔둔 자망(그물)을 1닥(50m) 걷었더니 명태가 한 10마리 걸렸더군요. 정말 기가 막힙디다. 다른 자망은 그냥 두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 명태의 70% 이상은 강원도에서 난다. 그리고 강원도 명태의 70% 이상은 거진에서 난다. 거진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강원도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강원도 고성군의 98년 명태 총매출은 77억5300만원. 97년 125억8400만원에 비해 48억 정도가 줄었다. 자망명태의 경우 2009t에서 1429t으로 600t 가량이 줄었다. 월별로도 지난해 4월과 5월에 각각 729t, 120t 나던 것이 11월, 12월에는 55t, 49t에 불과했다. 올 1월 들어서는 어획고 자체가 기록되지 않았다. 연승명태는 지난해 12월 초순 이후, 자망명태는 12월 중순 이후 끊긴 것이다.

(사진/ 거진항의 김수민씨 부부. 명태잡이배를 더 이상 타지 못한 채 생활보호대상자로 생계를 유지하는 신세가 됐다.)

물론 명태 어획량이 줄어든 게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연근해 명태 어획량은 81년 16만5837t에서 97년 7283t으로 1/20 이하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자원 감소와 이상기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먼저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는 것은 남획으로 인한 명태의 자원 감소다. 원래 우리나라 명태의 주어장은 북한쪽에 있다. 해방 이전 한해 27만t에 이르던 명태 어획량은 해방 뒤 1만여t 수준으로 급감했던 것도 북한 원산만 앞바다의 주어장을 잃어버린 결과였다. 그뒤 남한의 어획량이 다시 10만t 수준으로 올라온 것은 70년대 들어서였다. 이렇듯 어획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은 70년 명태 새끼인 ‘노가리’ 어획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명태잡이가 극성하던 77∼79년 사이 전체 명태 어획량의 80% 이상은 명태 성어가 아니라 노가리였다.

남북한 어획경쟁에 해류이상도 한몫

또 노가리와 함께 명태 성어에 대한 남획은 명태 자원 자체를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해양연구소 김수암 박사는 “70년대는 남북한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격렬하게 경쟁하던 시기였다. 이것은 명태 어장을 두고도 일어났다. 휴전선이 없는 동해를 회유하는 명태를 남북이 서로 더 많이 잡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결국 80년대로 들어서며 명태 자원은 더이상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런 책임은 마구잡이로 명태를 잡아들인 남북한 모두에 있다”고 지적했다.

거진항 어민대기소에서 만난 동광호 박준식(40) 선장은 저인망기선을 원망했다. “대구릿배(저인망기선)들이 명태 씨를 다 말립니다. 명태 치어(노가리)는 물론이고 알이나 알을 낳는 수초까지 다 훑어버리는 거예요. 알과 치어가 제대로 못 자라니 갈수록 명태가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제 명태가 대게나 대구 꼴 나는 거지요.” 그는 문어라도 잡아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명태 어획량이 준 다른 이유로는 바닷물의 고온화와 이상해류가 지적된다. 국립수산진흥원은 91∼95년의 해수온이 71∼75년에 비해 거진 1.18도, 강릉 1.01도 올랐다고 밝혔다. 또 수심 500m의 해수온도는 0.216도, 1천m는 0.15도가 올랐다. 해수온 변화에 따라 바다 생태계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10년간 고등어, 멸치, 오징어 등 난류성 어종의 어획고는 30∼300%까지 늘었다. 반면 한류성 어종인 대구와 명태는 각각 85%, 88%가 줄어들었다.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가 한겨울에 거진, 대진 등 동해 북단에서 잡히고, 한류성 어종인 명태가 초여름인 6월에 거진 앞바다에서 하루 4∼5t씩 잡히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기엔 해류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북한 한류와 쿠로시오 난류가 만나는 곳은 동해의 북위 38도선 부근이다. 그래서 북위 38도30분에 위치한 거진은 동해 명태어장의 최남단으로 남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 겨울 들어 거진 앞바다의 수온은 평년에 비해 1∼2도 가량 높다. 해수온이 높다는 얘기는 북한 한류가 거진 앞바다까지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북한 한류를 타고 내려오는 명태가 거진 앞바다에서 잡힐 가능성은 만무한 셈이다. 명태도 휴전선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공판장에선 정말 먼지가 났다

저녁 무렵 생태찌개로 유명한 ㅅ횟집을 찾았다. 하지만 ‘생태찌개 전문’이라는 이름은 메뉴판에만 남아 있었다. 11월부터 명태가 눈에 띄게 줄었고, 12월에는 생태찌개를 판 날이 손에 꼽을 만하다고 했다. 30여 횟집 중 서넛이 이미 문을 닫았는데, 그나마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는 게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 서울에서 파는 생태찌개는 어찌된 것일까? “다른 지역에서 좀 나는지 몰라도 웬만한 건 원양이나 북한 동태를 녹여 판 것이라고 봐야지요. 생태는 기껏해야 3∼4일밖에 보관을 못하니까요. 명태가 나지 않는데 어떻게 생태를 먹겠습니까.”

거진항의 황량함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수협 공판장엔 찬바람만 불었다. 메마른 바닥엔 오래 전에 떨어진 듯한 생선이 말라붙어 있었고 사람의 자취는 찾기도 힘들었다. 공판장의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건조물은 폐가처럼 스산했다. 공판장 밖으로는 300여척에 이르는 배들이 그대로 부두에 묶여 있었다. “먼지가 난다”던 이야기는 이걸 두고 한 말이었다.

다시 공판장이 북적거릴 날이 올 수 있을까. 어민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진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이 대부분 쇠락하는 마당에 명태라고 해서 예외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거진=글 김규원 기자,사진 장철규 기자

gim@ma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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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9년 01월 28일 제2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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