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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림자'에 목졸린 정보경찰
'사찰카드' 파문으로 다시 도마 위에… 권력과의 유착역사

(사진/이화여대 근처에 자리잡은 대현동 정치분실. 한남동에도 경제분실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굴곡 많았던 우리 현대사에서 경찰의 정보파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정보기구의 하나였다. 그런 이력 때문일까. 국민들에게 정보경찰의 모습은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게다가 최근 큰 물의를 빚은 ‘사찰카드’ 문제로 정보경찰은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보형사 일과 언론사 기자들과 비슷

정보과란 ‘사회적 안전과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회 불안요소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특수부서’로 정의된다. 조직체계는 중앙조직의 경우, 치안감인 정보국장 산하에 국장을 보좌하는 정보심의관(경무관급)을 두고 있으며 그 아래에 정보1과(서무)와 2과(정치), 3과(사회·문화·노동), 4과(학원·종교)가 편제돼 있다. 이 가운데 2과는 서울 이화여대 앞 대현동에 정치분실을, 3과는 한남동에 경제분실을 별도로 운영중이다. 수도 치안을 맡는 서울경찰청 정보조직은 경찰청 못지 않게 방대하다. 경무관인 정보관리부장 지휘 아래 정보 1∼4계를 거느린 1과와 5∼7계를 거느린 2과가 있으며, 서울시청에도 직원을 파견하고 2개 분실을 별도로 거느린다. 일선 경찰서 정보과는 서무인 정보1계와 외근부서인 정보2계로 구분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보과 형사들은 바로 일선경찰서 정보2계에 배속된 직원들이라고 봐도 된다.

정보과 형사들은 대개 관할하는 동마다 한명씩 배치되지만, 재야단체나 정·재계 인사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엔 더 많은 인원이 배치되기도 한다. 경찰청이나 지방경찰청 직원들은 정부기관이나 대형 사회단체, 언론사 등 일선 경찰서보다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관’을 맡는다고 보면 된다.

정보형사의 일과는 언론사 취재기자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근무형태나 시간이 뚜렷하게 고정돼 있지 않고, 출입처에서 취재원들로부터 정보를 듣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점 등이 그렇다. 더욱이 알짜정보를 얻기 위해선 오랫동안 한 지역에 터주대감으로 머물며 ‘취재원’과 깊은 친분관계를 가져야 한다. 일선 경찰서 정보과에 10년 이상된 붙박이 형사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감시대상이었던 재야인사와 깊은 정분을 쌓는 경우도 많다.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20년 가까이 담당하다 그와의 교분을 엮어 책으로 출판한 전 마포경찰서 정보과 형사 이열씨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보경찰의 활동이 지금까지 대부분 정권의 통치기반 구축을 위한 밑바닥 정보수집용으로 악용되었다는 데 있다. 이번에 여론의 질타를 받은 ‘민간인 사찰카드’처럼 존안자료 작성과정에서 항상 잡음이 일었고, 이들 자료가 여당이나 청와대로 넘어가 권력층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인 현철씨를 치료했던 의사 박경식씨는 “지난 92년 대선 때 경찰이 김영삼 후보쪽에 동향정보를 제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 정보과 뿌리는 일제 고등경찰과

사실 지금의 경찰 정보과는 정치사찰로 악명높았던 일제시대 고등경찰과가 모태인 만큼 정권의 도구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이 1910년 조선을 합병한 직후 불온한 조선인의 동향을 감시·통제한다는 명분 아래 만든 고등경찰과는 일제 말기까지 우리 민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숱한 공안사건을 조작했다. 고등경찰과는 해방 뒤 사라졌으나 정부수립 뒤인 48년 11월 내무부 치안국으로 경찰조직이 재편될 때 사찰과로 부활된다. 좌·우익의 대립 심화로 시국정보 수집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찰과는 61년 5·16쿠데타 뒤 정보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정치사찰 위주의 활동은 계속됐다. 평시엔 민간인에 대한 사찰카드 작성과 재야인사의 감시·미행 등을 맡고, 선거 때는 여권 후보에 야당 동향을 전달하는 망원으로 뛰었던 정보과 형사들은 군사정권 시절엔 국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기도 했다.

정보과 형사들은 대규모 시위가 잦았던 80년대가 ‘전성 시대’였다고 회고한다. 치안본부에 정보 전담부서인 4부가 신설되면서 정보 업무가 대폭 강화됐고, 정보과 직원들은 대학가 등을 마음대로 누비며 ‘불순세력’을 색출하는 데 기여했다. 광범위한 경찰의 존안카드가 전국적으로 완비된 체계를 갖춘 것도 이때였다. 존안카드 작성을 비롯한 경찰 정보활동의 법적인 근거는 간단하다. ‘치안정보의 수집 및 배포’라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3조가 사실상 전부다. 그러나 이 규정은 구체적 기준이 모호한 데다 경찰이 그동안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측면이 많아, 끊임없이 인권침해와 사찰 논란을 낳았다.

경찰청 관계자들은 90년대 들어 정치·사회 상황이 안정되고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정보수요가 많이 줄었지만, 정보 업무가 사양길에 들어선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더욱이 구제금융 사태를 맞아 노동계와 노숙자, 실직자 동향 등 새로운 정보수요가 계속 창출돼 정보과의 활동 폭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정보요원들의 활동 방식은 변하지 않고 제자리 수준을 맴돌고 있다. 아직도 대다수 정보과 직원들은 정치성 행사나 주요 집회에 일반 당원이나 기자인 척 위장하고 참석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사진을 찍고 동향을 입수하는 재래식 방식을 쓰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서울 강동경찰서 정보과 직원들이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의 지구당 운영위 모임에 기자를 사칭해 참가했다가 들킨 적도 있다. 지난해 11월엔 대구 중부경찰서 직원이 대구시청 3층에 사무실까지 두고 공무원 동향을 노골적으로 캐다 물의를 빚자 사무실을 폐쇄하기도 했다. 지금도 지방 소도시 행정기관의 경우, 정보과 직원이 업무에 간섭하거나 주요 간부의 동정까지 챙기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보과 형사들 “이제는 3D 업종” 푸념

예전보다 위세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정보 보직은 경찰 인사에서 여전히 선망받는 보직이다. 특히 경찰청 정보국장은 전국 경찰의 정보를 총괄하는 노른자위 직책이며,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도 빼놓을 수 없는 요직이다. 그동안 이들 자리는 대구·경북(TK)이나 부산·경남(PK)이 수십년간 독점해 왔다. 김대중 정부에선 정반대로 정보국장엔 호남 출신인 이대길 전 공보관이 임명됐고, 문희상 안기부 기조실장의 매제인 이상업씨가 서울청 정보관리부장에 임명됐다. 또 지난 3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경찰 인사 때엔, 여당의 정치권 실력자들이 “지역구 경찰서 정보과에 내가 잘 아는 사람을 심어달라”고 로비를 벌이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 일선 정보과 형사들의 사기는 상당히 떨어진 상태라고 한다. 정권교체의 영향으로 가장 중요한 업무였던 시국정보 수요가 격감한 데다, 사회운동의 핵으로 새롭게 떠오른 노동운동권은 정보파일 축적이 제대로 돼있지 않아 일하기가 훨씬 힘들어졌다는 게 많은 정보과 형사들의 푸념이다. 최근 물의를 빚은 사찰카드 작성 지시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일선 경찰관계자들은 해석하기도 한다. 서울 ㄱ경찰서의 한 정보과 형사는 “일선에서 정보과는 3D업종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며 “관내 출입단체들이 협조도 잘 안할 뿐 아니라 정치상황의 변화 때문에 열심히 일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더욱이 정치상황의 변화로 예전처럼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식의 상명하복도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라고 한다. 이번 사찰카드 파문에 대해서도 일선 직원들은 “뭣 때문에 오해살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찰카드 파문 일선 경찰들도 불만

최근의 민간인 사찰카드 파문으로 ‘국민의 정부’ 정보경찰은 최대의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90년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사건이 사찰대상자에 대한 전원배상이라는 사법부 단죄를 받은 것처럼, 이번에 존안카드에 오르내린 시민단체와 재야인사들도 법정소송이나 정보공개 청구를 잇따라 제기할 전망이다. 경찰청의 고위간부는 “정보경찰은 경찰 가운데 누구보다 국가관과 사명의식이 투철하다”며 “우리를 믿어달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경찰청 정보국이 국민의 신뢰받는 정보기관으로 우뚝 서게 될 날은 언제쯤일까.

노형석 기자/ 한겨레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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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8년 12월 31일 제2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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