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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한국에서만 한다?

(사진/일본이 축구라는 용어를 만들었지만 오래 전에 용도폐기했다. 지난해 9월 도쿄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 한국과 일본 경기 모습.)

지난 6월26일 밤 11시께. 서울의 한 맥주집에서는 10여명의 단체손님이 몰려와 잔을 주고받으며 프랑스월드컵 일본과 크로아티아의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한국팀은 이미 16강 진출은 물론 1승의 꿈도 접어버린 뒤였다. 이들은 일본이 슈팅을 하려 하면 “저런, 막아야 돼”라고 손을 저었고 크로아티아가 골을 넣으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우리도 다 졌는데 일본이 먼저 1승을 하는 것은 못봐”라는 말도 나왔다. 옆자리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 손님도 “아무리 스포츠라지만 축구에서도 반일 감정은 막을 수 없지”라고 거들었다.

‘축구’에서도? 그렇다면 국내에서 부르는 축구(蹴球)는 어떤 어원을 가지고 있을까. 한자어니 중국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축구라고 하지 않고 족구(足球)라고 부른다. 국내에서 흔히 네트를 치고 즐기는 발차기 놀이인 족구와 한자는 같지만 뜻은 전혀 딴판이다.

구한말인 19세기 말 축구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일정한 공식명칭이 없었고 주로 석구(足+易, 球) 또는 척구(足+鄭, 球)라고 불리웠다. 당시 일본은 축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석구와 척구는 죽은 말이 되고 축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축구만이 아니다. 야구 농구 등 국내 3대 스포츠가 모두 그런 식이다. 애초 야구(野球)도 ‘타구’ 또는 ‘격구’라고 불리웠지만 역시 일본의 점령하에서 변했다. 야구는 말 그대로 풀이하면 ‘들에서 하는 공놀이’이다. 야구경기에 낯선 사람에게는 전혀 야구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는다. 차라리 골프가 연상된다. 반면 중국과 대만에서는 봉구(棒球)라고 부른다. ‘방망이와 공’ 또는 ‘방망이로 즐기는 공놀이’라는 뜻으로 야구의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찌르고 있다. 대만에서는 프로야구를 ‘직업봉구’라고 한다. 한국은 프로야구를 창설하면서 프로야큐(Pro Yakyu)라는 용어를 그대로 썼다. 야큐는 야구라는 한자의 일본식 발음일 뿐이다. 농구(籠球)도 똑같은 경우다. 중국에서는 람구(籃球)라고 한다.

재미있는 현상이 또하나 있다. 축구용어의 원산지 일본은 이미 미국식 영어인 사커를 좇아 축구라는 말을 용도폐기하고 ‘사카’라는 말을 쓴다. 로큐(농구의 일본식 발음)도 죽은 말이 되어 젊은 일본인들은 알아 듣지 못한다. 영어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바스케토 보루’가 자리잡힌 지 오래다. 축구나 농구는 이제 마치 한국식 한자어처럼 돼버렸다.

축구·농구·야구라는 용어는 극단적으로 보자면 일제의 잔재이고 순화의 대상이다. 반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란 관객들로 봐서는 멋진 장면에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족하고 감정이입은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다. 반일 감정이 발휘돼야 할 곳은 따로 있다.

송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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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8년 07월 23일 제2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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