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Ⅰ . 현대 걸리버 대우증권 대한항공
 

아버지의 ‘순리’를 거역한다
“아니다! 싫다! 틀렸다!”로 무장한 전투적 페미니스트들

(사진/여성단체연합의 미인대회 폐지 요구 집회.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연대한 페미니즘 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7월3일 오후 7시 서울 신촌의 여성전용카페 ‘라브리스’. 여러날 전 국내 일간지들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한 행사가 열렸다. 이름하여 ‘보지음악다방(Cunt Cabaret).’ 점잖은 양반들은 기절초풍할 행사다.

‘다시 찾은 나’를 위한 도발

이들이 이 행사를 연 ‘출사표’를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보지라) 부르지 말 것/ (보지에) 손대지 말 것/ (보지끼리) 맞닿지 말 것//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벽장을 뛰쳐나온다/ 보지라 불러 여성의 몸에 터부를 깨고/ 보지에 손댐으로써 성적 쾌락을 되찾고/ 보지끼리 만남으로써 아버지의 ‘순리’를 거역하였다// 그리고 ‘잃어버린 너’의 복지다방을 과감히 지나쳐/ ‘다시 찾은 나’를 위해 보지다방에 당도하였겄다, 얼쑤!”

(사진/이화여대의 여성찾기 행사. 가장 진보적인 사회운동 안에서도 '여성'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공연에서는 오직 여성들의 음악만 들려준다. 김소희, 안숙선, 엘리자베스 자케 게르, 마리아 칼라스, 제시 노먼, 마를렌 디트리히, 에디트 피아프, 밀바, 베시 스미스, 마할리아 잭슨, 주디 갈란드, 엘라 피츠제럴드, 니나 시몬, 아레사 프랭클린, 라체 페렐, 박성연, 크리스 윌리엄슨, 재니스 조플린, 패티 스미스, 트레이시 채프먼, 스위트 허니 인 더 록, 김추자, 한영애, 자우림, 황보령, 토리 에이모스, 멜리사 에더리지, 케이 디 랭, 아니 디 프랑코, 트레이시 본햄, 슬리에터 키니, 베이브스 인 토일랜드, 영화 <탱크 걸, 올 오버 미>의 음악 등.

누가 이 행사를 열었을까? 한국여성동성애자(레즈비언) 운동모임인 ‘끼리끼리’(회장 한바다)다. 지난 94년 결성된 이 모임은 한국의 가장 앞서가는 레즈비언 모임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번 행사의 취지를 네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남성 중심의 음악 역사와 산업에서 ‘여류’로 주변화한 여성 음악을 여성들이 모여 들음으로써 그 가치와 힘을 발견한다.” 둘째 “다양한 여성들이 한 공간에서 다양한 음악을 들음으로써 서로의 장단점과 다름을 존중한다.” 셋째 “일하고 변화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서로 반갑게 만나고 어우러지는 여성만의 축제를 경험한다.” 넷째 “보지(여성)에 대한 이성애·남자 사회의 정의를 깨뜨린다.”

이 행사는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의 선언처럼 보인다. ‘래디컬 페미니즘’이다. 말 그대로 근본적이고 급진적이며 전투적인 페미니즘이다. 이들은 기성 페미니즘 운동이 하지 못했거나 금기시했던 영역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이 기성 페미니즘 운동과 가장 차별적인 대목은 ‘아니다’ ‘싫다’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점이다. 성의 화해를 포기하고 아예 ‘남성’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은 래디컬 페미니스트 소모임의 등장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마녀’와 ‘돌꽃모임’이다. 지난 96년께 만들어진 ‘마녀’는 극장 마녀와는 다른 팀이다. 이들은 연극 <코인라커>, 퍼포먼스 <나는 여성이다> 등 문화운동과 <마녀>라는 월간 잡지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의 모토는 ‘모든 권력과 억압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이다.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밝힌 리나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여성이면서 레즈비언이기에 저는 이 사회에서 이중의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피억압자이자 소수자인 셈이죠. 게다가 아무리 법·제도가 바뀌어도 사람들의 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제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스스로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것은 다수자가 소수자를 억압하지 않고 소수자 그룹이 더 많아져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세상이죠.”

이 모임의 주요 멤버는 리나, 현진, 뿌리, 윤경, 혜은, 미영, 희씨 등이다. <마녀> 98년 3호 여성의 생리에 대한 글을 바탕으로 한 연극 ‘피를 나눈 자매들’은 대학 등에서 지난 3월부터 6월 초까지 석달간 순회 공연을 벌였다. 이들은 남성중심의 결혼제도가 문제있다고 말할 뿐 아니라 실제로도 결혼하지 않을 작정이다. 여성 공동체와 레즈비언 공동체의 수립은 이들의 구체적 목표 중 하나고 현재 이들은 그것을 실험하고 있다.

또다른 소모임으로는 ‘돌꽃모임’이 있다. 이들은 올 초 벌인 ‘지하철성추행방지’ 퍼포먼스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른바 게릴라전 방식의 활동을 지킨다. 자신들의 문제제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본디 이 모임은 지난 95년 이화여대 고려대생 난동 사건 때 모인 각 대학 여성 대표들이 만든 ‘들꽃모임’에서 비롯했다. 그 멤버들 중 졸업생인 호빵, 짜투리(짜증나는 세상 투쟁하며 살자), 땐싸 등 다섯명이 따로 ‘돌꽃’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저열함 앞세워 남성중심 사회의 편협함 지적

이들이 게릴라전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호빵이라는 별명의 한 멤버는 “내부에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고, 일상의 구체적인 문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여러 여성에게 피해를 주는 남자가 있으면 우리 신분을 밝히지 않고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해요. 이런 사례는 심각한 것이지만 여성단체나 대규모 집회 방식으로 풀 수는 없는 일이죠.” 이들은 지하철성추행방지 퍼포먼스에서도 갑자기 나타나 행사를 벌인 뒤 바로 사라졌다. 게릴라처럼.

이들은 <카레오이> <카르오기> <카라오라> 등 ‘저열한 페미니스트들의 편협함’을 드러낸다는 세권의 잡지를 냈다. 물론 이 ‘저열한’이나 ‘편협함’은 사람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반어적이다. 이것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이들 활동의 기본방침은 자유롭게 하고 싶었던 주변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한다는 것이다. 이론보다는 자기 얘기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런 게릴라 그룹들은 ‘니아까’, 영남 지역의 ‘살상’, ‘1312’(일상에 시비걸자) 컴퓨터 통신상의 동호회인 ‘독립여성모임’ 등이 있다.

누구의 딸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들의 또다른 운동 방식은 성을 쓰지 않고 이름이나 별명을 쓴다. 최근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쓰는 운동이 여성 운동가들 사이에서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보기에 그런 방식은 절충이고 타협일 뿐이다. 아버지 성과 함께 어머니의 성을 쓴다 해도 그것은 어차피 외할아버지의 성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누구의 딸’이기보다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이름이나 별명을 쓰는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 표현에서도 매우 엄격하다. 천리안 여성학동호회 래디컬 페미니스트 소모임방의 이름은 ‘독립’여성모임이다. 이들은 ‘독신’여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또 ‘미혼’이라는 말 대신 ‘비혼’이라는 말을 쓴다.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호모’라는 말은 절대 쓰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동성애자’. 성을 구분할 때는 레즈비언(여자), 게이(남자)로 쓴다. 다만 전문·학술 용어로 동성애를 뜻하는 ‘호모 섹슈얼’이란 말은 쓴다. ‘동성애’가 ‘동성연애’를 대체한 지는 오래 됐다. 이름을 달리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위한 카페도 문을 열었다. 서울 신촌기차역 근처에 97년 5월 문을 연 ‘고마’는 여성 운동가들의 쉼터이자 문화공간으로 뿌리를 내렸다. 성폭력상담소와 이대 대학원 여성학과 출신 여성들이 문을 연 첫 페미니스트 카페다. 이곳에서는 여성 운동가들의 모임과 세미나, 문화행사 등이 활발하다. 이곳에 와서 여성들은 자기 방처럼 자유롭게 떠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특히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출입이 잦다.

지난 6월27일에는 제1회 고마 문화상, ‘페미니스트, 시를 만나다/고정희를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제1회 고마문화상 행사가 열렸다. 이름은 시상식 같지만 실제로는 시를 다양한 방식으로 읊는 퍼포먼스였다. 시를 노래로, 랩으로 연주하고, 춤과 행위예술로 보여줬다. 지난 6월8일 기일을 맞은 고정희 시인의 <오매, 미친 년 오네>라는 작품을 비롯해 여러편이 다양한 방식으로 낭독됐다. 고은광순, 리나씨, 밴드 투견 등이 참여했다.

이곳에서는 97년 6월 시 발표회를 시작으로 <조미희 그림전>, 페미니스트 로커 김지현 공연 등이 꾸준히 열렸다. 97년 12월31일에는 50여명의 여성 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망년회를 함께 하기도 했다. 여성단체연합, 성폭력상담소, 여성의 전화, 여성노동자회, 또하나의 문화, 정신대대책협의회 등에서 참석했다. 그동안 활동을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격려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10월 역시 신촌에 문을 연 ‘보지음악다방’의 ‘라브리스’도 여성전용 카페다.

자유롭기 위해 홀로 선다

지난 6월 초에는 페미니스트 계간지 <이프>(if)가 창간 1돌을 맞았다. 이 ‘솔직하고 노골적인’ 페미니즘 잡지는 화제와 우려를 한몸에 받으며 지난해 5월 창간호를 냈다. 이제는 이 썰렁한 국제구제금융(IMF)시대에 수지를 맞출 정도로 탄탄히 자리를 잡았다. 독자도 처음의 20∼30대 지식층 여성에서 10∼50대까지 넓어졌다. 다양한 방식의 페미니즘 운동 내용을 아우르겠다는 목표는 여전하다.

그래서인지 이 잡지의 소재는 얼핏 보기에 선정적이다. ‘그 여자의 첫 경험’ ‘한 전직 창녀가 <창>의 임권택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 ‘호스트바 잠입 취재’ ‘<선택> 작가 이문열 서생에게 보내는 한 조선조 여인의 일갈’ ‘처녀막의 진실’ ‘자위에 대하여’. 그러나 이 소재들에 대한 분홍빛 시선을 거두고 근본적으로 다룸으로써 그런 혐의를 단박에 날리고 있다. 가장 솔직하고 구체적인 태도로 페미니즘을 다루는 것이다.

이런 래디컬 페미니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한국 페미니즘의 연원은 멀게는 일제시대 신여성 운동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래디컬 페미니즘의 직접적 계기가 되는 것은 70년대의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80년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이 세가지 흐름들은 종합적인 정치적 이념과 세계관 안에 놓여있다. 쉽게 말해서 페미니즘을 독자적으로 보지 않고 전체 사회운동 속에서 위치 지우며 남성들과 함께 활동하는 페미니즘이다.

그러나 가장 진보적인 사회운동 안에서도 여성은 자유롭지 않았고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였다는 반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기존 페미니즘 운동이 가진 문제를 지적하며 나타났다. 그에 큰 힘을 실어준 것은 ‘또 하나의 문화’(또문)였다. 사회운동권의 대동단결을 외치던 80년대만 해도 이 동인그룹의 외침은 뚱딴지같이 들리기도 했다. 또문의 유승희 대표는 “우리 동인들이 여성 문제를 중심으로 제기한 여러 논점들이 90년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화두로 던져진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통합에서 분리로.

래디컬 페미니즘은 레즈비언 페미니즘과도 상당한 관련을 갖고 있다. 지난 70년대 미국에서 레즈비언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등장한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이성애 제도’에 여성 억압의 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남성 중심의 사회 자체를 적대시하고 이성간의 결혼 제도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자신들의 의견을 분명히 했다. 레즈비언들에게서 이런 문제제기가 먼저 이뤄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레즈비언은 여성으로서, 동성애자로서 이중의 차별을 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녀가 따로 살 때 차별은 없다?

<if>의 박미라 편집장은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지향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들의 문제 제기가 단기간에 현실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현재의 남성 중심 가족제도나 사회구조 자체다. 이들이 볼 때 근본적인 해결책은 남성의 잘못을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남녀가 따로 사는 것이고 이성애 중심 사회를 깨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 그것을 몸으로 실험하는 중이다.”

김규원 기자

▣ [신화와 역사가 있는 7일간의 영어여행] 절찬리 판매중 ▣
▣ 작가 고종석과 함께 떠나세요. 주문 : 710-0501~2 ▣

한겨레21 1998년 07월 09일 제215호
.

.
.
자유게시판



.


.

●지난호 ●한겨레21홈 ●씨네21 ●편집자에게 ●구독신청


Copyright 1995-1998 한겨레신문사
webmast@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