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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도 못건진 금모으기운동
헐값 매각 뒤 비싼 값에 재수입

(사진/지난 1월 신세계 백화점에서 벌어진 금모으기 운동. 총 2백20톤의 금이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동안에도 종합상사들의 금 수입은 계속됐었다.)

한쪽에서는 금모으기운동이 한창이었다. 달러 한푼이라도 더 벌어들이자는 뜻으로 보통 시민들이 돌반지까지 내놓고 있었다. 나라를 살리겠다는 마음에 제값을 받는 것인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비싼 값에 금을 수입해 싼값에 외국에 재수출하고 있었다.

최근까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금모으기운동 과정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재벌그룹 종합상사들이 그 장본인들이다. 이뿐만 아니다. 금모으기운동 자체에도 작다고 할 수 없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국제시세를 훨씬 밑도는 헐값에 팔렸는가 하면, 국내 금 유통업 종사자의 절반이 실업자 신세가 됐다. 금모으기운동의 냉정한 ‘손익계산서’를 뽑아보면 어떤 모습일까.

국제공인 안 받아 헐값 자초

금모으기운동은 지난 2월 말 주택은행·국민은행 등 5개 금융기관이 금모으기 업무를 중지한 데 이어 4월 말 농협중앙회를 마지막으로 모두 끝났다. 운동이 시작된 지난 1월5일부터 걷힌 금은 약 2백27t이다. 1월에 가장 많은 1백65.65t이 걷혔고, 이후 줄어들어 2월에는 53.96t, 3월 5.38t, 4월 8백kg이 모였다. 전국적으로 3백51만여명이 여기에 참여했다. 4가구당 1가구꼴로 평균 65g을 내놓은 것이다.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다.

모인 금은 대부분 팔렸다. 금 수출액은 1/4분기 수출액(통관기준 3백23억2천만달러)의 약 7%인 22억달러다. 대수롭지 않은 액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금 수출액을 빼면 1/4분기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늘어났을 뿐이다. 수출증가분의 대부분을 금 수출액이 차지한 셈이다. 환율이 올랐음에도 부진한 수출 실적을 금모으기운동이 메운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겉모습에 비해 실속이 알차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출업무를 맡은 재벌그룹 7대 종합상사들이 앞다퉈 한꺼번에 금을 팔기 시작했다. 공급량이 많아 값이 떨어졌고, 국제금평가기관인 LBMA 등을 통해 국제공인을 받지 않고 서둘러 파는 바람에 국제시세보다도 낮은 헐값에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이중의 손해를 본 것이다.

게다가 LG금속·고려아연 등 국내 제련업체들의 처리능력 부족에 따라 상당량의 금 제련작업이 해외업체를 통해 이뤄졌다. 제련에 따른 부가가치가 외국업체에 넘어간 것이다. 또 수집된 금은 모두 금덩어리 형태의 지금(地金)이나 주물덩어리(잉곳)로도 수출됐다. 국내 세공업체에 맡겨 장신구로 가공해 팔면 수출가격의 30% 이상을 더 받을 수 있는데도 이를 전혀 이용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국제시세는 온스(약 30g)당 2백90∼3백달러에 거래되는데, 수집된 금의 20%가 세공을 거쳐 수출됐을 경우 2억∼3억달러를 더 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때문에 원료를 얻기가 어려워진 국내 중소 세공업체의 80%가 휴·폐업 상태에 놓여 있다. 귀금속기술자 2만여명 중 50%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일부는 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게다가 살아남은 업체들은 환율이 올라 비싼값에 외국에서 금을 사오고 있다. 2백t이 넘는 금이 아무런 산업효과도 낳지 않고 밖으로 흘러나간 것이다. 일각의 우려대로 대량의 국부가 외국으로 유출된 것이다.

금모으기 운동 중에도 금 수입 계속

금모으기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제값을 받지도 못했다. 순금의 순도를 실제보다 2∼3% 낮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종합상사들은 금을 모으고 수출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를 금액으로 계산하면 5백억∼6백억원이나 된다. 2백20여t을 모으고 수출하는 데 이렇게 많은 돈이 드는지 의문이다. 실제 수집·수출비용의 차액이 어디론가 흘러갔다고 추론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금 수출업무를 맡은 재벌그룹 종합상사들이 금모으기운동이 한창인 때에도 금을 수입해 팔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금을 수출한 해외업체로부터 수출가격보다 0.2∼0.5% 높은 값으로 사들였다. 올해 들어 지난 4월 말까지 대우·현대·LG 등 7대 종합상사들이 수입한 금은 약 10억달러에 이른다. 1월과 2월 각각 7천5백만달러, 1억1천만달러, 3월 3억9천6백만달러였다. 4월에도 (주)대우가 2억6천만달러, 현대종합상사 6천1백만달러, LG종합상사 5천7백만달러, 삼성물산 6백만달러 등이 약 4억달러의 금을 수입했다.

이들이 금 수입을 위해 도입하는 무역신용은 월 3억∼4억달러에 이른다. 이를 통해 연이율 11∼12%에 6개월까지 외상거래를 한다. 반면 금을 수출하면 바로 달러를 손에 쥘 수 있고 이를 원화로 바꿔 국내 금융기관의 고금리 금융상품에 투자하면 적지 않은 이자수익을 낼 수 있다. 해외업체들로서는 종합상사들에 비싼값에 팔았다가 싼값에 되사들이는 셈이다.

결국 금모으기운동을 통해 국민들이 모은 상당량의 금이 싼값에 팔려 비싼값으로 다시 들어왔다가 헐값에 다시 팔렸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번 국부가 유출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종합상사들이 수출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서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터진 뒤 종합상사는 재벌그룹 구조조정과 관련해 1순위 대상으로 꼽혀왔다. 지난 2월6일 한국은행은 출혈수출에 따른 국부 유출을 우려해 금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종합상사들은 “수집된 금 전량의 수출계약이 이미 끝나 한은에 팔 금이 없다”고 설명했다. 전량 외환보유고로 잡히는 금을 한국은행(한은)에서 거의 사들이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뒤에도 50여t이 더 걷혔고 그중 한국은행은 겨우 3.04t을 매입할 수 있었다. 은행에서 금을 예탁받아 통장이나 예탁증서를 발급하고 예탁기간이 끝난 뒤 운영수익을 돌려주는 골드뱅킹 업무가 흐지부지된 것도 이런 종합상사의 출혈수출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은 금 보유량 적정수준 이하

한은 역시 금을 사들이는 데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한은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 13.4t에 불과하다. 이중 미국 FRB에 9t이 보관돼 있다. 이는 각국 중앙은행의 금보유량의 30분의 1∼10분의 1 수준이다. 금이 달러와 마찬가지로 외환보유고로 잡힌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정수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다는 지적도 있다.

한은이 금 매입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다. 보관비용이 많이 들고 달러 등의 통화에 비해 유동성이 떨어지는 무수익자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화경제연구원 김진엽 연구원은 “시중은행 금고 등을 이용하면 많은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라며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한다.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금이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이는 ‘달러의 가치가 안정적일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현재 장기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경제 역시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거품이 끼어있는 데다, 달러 가치가 15∼20% 높게 평가돼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유럽 각국 중앙은행에서 금을 팔고 있는 것도 유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기보다,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하로 규정한 유럽통화동맹(EMU) 가입기준을 맞추기 위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아시아위기를 계기로 2차대전 이후 탄생한 브레턴우즈체제에 버금가는 국제금융시스템 개편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진엽 연구위원은 “크고 작은 국제금융시스템 개편 때 언제나 금이 동반됐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금 수요량이 크게 늘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중국 등은 꾸준히 금 매입

금을 보유할 필요성을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 4월24∼25일 국제금값은 온스당 3백13달러까지 올랐다. 금모으기운동을 통해 걷힌 금의 일부를 이때 팔았다면 짭짤한 실속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한꺼번에 내다팔 때 시세는 2백80∼2백90달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금값은 96년 2월2일 온스당 4백15.4달러를 기록한 뒤 꾸준히 떨어지고 있는데, 지금 시세는 저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일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중국 등의 국가들은 꾸준히 금을 사들이고 있다. 제값도 못 받고 외국으로 흘러나간 2백20t이 자꾸 아깝게만 느껴진다.

조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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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8년 05월 21일 제2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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