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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언론에 책임을 묻는다
IMF 폭풍이 몰려올 때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반성은커녕 아직도 호들갑만

(사진/97년 3월20일, 강경식 경제팀의 첫 기자회견. 경제팀이 아무리 죽을 쒔더라도 언론이 감시 기능을 제대로 했더라면 최악의 파국은 피했을지도 모른다.)

‘경제위기감 과장말자’('중앙일보' 11월1일치 사설), ‘경제 비관할 것 없다’('조선일보' 11월3일치 기고), ‘외신들의 한국경제흔들기’('동아일보' 11월10일치 사설)…. ‘DJ의 양심수론’('조선일보' 11월2일치 사설), ‘국민신당 청와대 자금지원’('중앙일보' 11월5일치 1면), ‘김대중씨의 양심수 석방론’('동아일보' 11월2일치 사설)….

이것이 한국언론의 현실이다. 경제위기로 한국경제가 침몰하기 시작하던 시점인 11월 초 국민들은 언론에서 위기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채 대신 대통령 후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상한 양심수 논쟁’을 지켜봐야 했다.

인동초 찬가로 ‘두번 죽음’

2000년대를 눈앞에 둔 중요한 시점에 있었던 두개의 거대한 사건. 대통령선거와 경제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한국의 언론은 무참하게 그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다. 권력지향성과 무능함이 그것이다.

“이미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언론권력은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어느 신문, 방송을 막론하고 본질적으로 같았다. 사태에 대한 예측능력, 실상전달,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은 없었다.” 주동황 교수(광운대 신방과)의 진단이다.

한국언론의 죽음을 선언하는데 주저하는 사람이 있을까. 대통령선거가 끝나자 마자 울려퍼진 ‘인동초 찬가’는 한국언론의 죽음을 확인했다.

대통령선거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정국을 거치면서 한국언론의 무능과 권력지향적 오만은 단지 언론의 문제에 그치는 거시 아니라 국가적 문제임을 입증했다. 국가경제가 침몰하고 있을 때 언론이 경보음을 울리는 것은 물론 실상전달, 원인분석, 전망, 대책제시 등 모든 면에서 실패했다는 것이 언론계 안팎의 진단이다.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언론사는 안타깝게도 한곳도, 단 한곳도 없다.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도대체 언론이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지금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속에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97년 하반기. 언론은 '한국호'를 자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견마잡이 구실을 확실히 했다. 그 한개의 채찍은 ‘무지’. 환율과 주가가 함께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던 지난해 11월 초 한국언론은 “경제위기감을 과장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해외언론이 한국의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을 내리고 있었던 시기인 11월1일. '한겨레'는 “‘루머가 해외금융시장에서 계속 나돌 경우 외국인 주식매도와 달러화 유출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정부 고위당국자가 루머가 사실이 아님을 확인시켜주고 외국인 환전보장을 약속해야 할 것’을 증권업계가 지적하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을 뿐이다. 2일치 '한겨레'. “정부가 채권시장을 조기개방해 미국이나 일본과 우리 금리가 차이가 나 자금유입이 기대돼 효과있을 것”이며 “외국인 주식투매는 무뎌질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이 외부필진의 이름으로 실렸다.

외국언론의 왜곡에 대처하라?

그 절정을 이루었던 것은 지난해 11월5일.

이날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이 IMF에 긴급자금을 요청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81년 설립돼 96년 7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이 통신사는 영국의 '로이터'와 함께 세계 2대 경제·금융정보 제공자로 통한다. 벌써 하락세로 돌아서 있던 한국의 원화가치는 이 통신이 긴급자금 요청을 전한 지 정확히 5일만에 1달러=1천원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한국언론은 최악의 상황을 겪기 시작한다. ‘외신의 악의적인 보도’에 분노해 반박문을 게재하도록 요구하겠다는 정부당국의 대책발표와 함께 언론보도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언론은 “금융시장의 루머는 한국흔들기를 의도하는 특성세력의 유포 가능성”('동아일보' 11월8일치 사설)을 지적하며 “'블룸버그 통신',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이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가 발표와는 다를 것이라는 보도는 루머의 연장선상에 있으므로 한은과 재경원은 루머를 수집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이어 “증시와 외환시장이 다시 혼란에 빠진 것도 일부 외국신문과 통신의 왜곡보도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며 “정부는 ‘단기외채가 8백억달러이고 외환보유고는 3백억이 안 된다’는 외신보도에 철저히 대응하고 재경원은 반박문 게재를 요청하라”고 요구했다. 한국경제의 실상을 들여다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 대신 당시 강경식 부총리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정부에 외국언론의 ‘왜곡’에 엄히 대처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한 재경원 출입기자는 “외국언론을 통한 보도를 볼 때 서방의 아시아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격에 대한 방어자세만 취했더라면, 근본적인 상황이야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지금처럼 최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와 했다. 당국의 강력한 부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탓에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언론은 세계경제의 흐름을 읽어내는 레이더가 되지 못했고 경보음 발령시기도 놓쳤다. IMF 구제금융 뒤에는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는 데도 실패했다.

언론이 사태를 알아차렸을 때는 경보음이 제 구실보다는 시장교란이라는 역기능만 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랬던 만큼 사태 원인을 진단하고 전망하는 것은 이미 한국언론의 손을 떠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희극으로 끝난 ‘재협상’논쟁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따지고 보면 우리 정치인, 기업인, 관료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예측불가능’에서 기인”('조선일보' 97년 12월12일치 ‘만물상’)한다는 주장에서부터 국민사치·방탕론, 재벌책임론, 김영삼 정권 및 관료의 무능·직무유기론 등등 다양한 주장들이 펼쳐졌다.

대통령선거 분위기와 얽혀 김영삼 정권 책임론이 활발히 주장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사치론’이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하며 파고들었다.

채만수 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도 ‘한국꼴 난다’는 '한겨레' 97년 11월26일치 칼럼을 통해 그런 진단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칼럼은 “요즘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일도 크게 보면 자만심에서 비롯한 자업자득이다. 집 사치, 옷 사치, 차 사치, 외식 사치, 해외여행 사치 등 분수를 모르는 짓거리들이 이어졌다. 기업의 차입경영과 과잉투자도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었고,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 운운하던 정부의 치적 자랑도 너무 앞섰다. …국민도 정부와 재벌만 탓할 일이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면 가계·기업·정부가 살을 베어내는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적고 있다.

채 부소장은 언론지면을 도배질한 이런 국민사치론이 “위기의 원인이나 배경, 향후 전망 등에 대한 이성적 논의는 사라진 채 ‘모두가 내 탓이요!’ 하는 식의 일종의 종교적 참회를 대중에게 강요하면서, 그 ‘탓’을 보상할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이 정도가 언론의 논의가 활발했던 논제라고 할 수 있다. 구제금융 이후에는 그나마 등장하던 경제처방마저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난국에 대한 진단 부분은 춤추는 언론의 전형이었다. ‘무책임한 재협상론’(12월11일 '조선일보' 최청림 칼럼)으로 시작된 재협상 논쟁은 경제적인 의미보다는 선거쟁점으로서의 의미만 강조된 채 선거에 이용됐다. 이들은 불과 한달만에 그 실효성이 입증된 재협상론을 ‘외화난의 주범’으로 몰아부친 것이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주범들을 보호하려 하였다.

이 논쟁을 의식한 탓인지 이후 모든 언론은 ‘IMF와 약속한 행동을 빨리 무조건 실천하라’는 주문을 내놓았다. 그러나 ‘재협상발언 때문에 외화난이 심화되고 있다’던 언론들은 새해 들어 “IMF의 대책은 한국의 현실을 무시한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뉴욕타임스')라거나 “한국은 재협상을 벌일 필요가 있다”는 외신보도를 인용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문제를 삼은 뒤라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고 할 수도 없는 곤혹스런 처지에 빠진 언론들이 슬그머니 재협상 필요성을 외신을 동원해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1월8일 IMF가 정부와 합의해 경제성장지표를 수정하면서 이 희한한 논쟁은 끝나고 말았다.

“정리해고는 빨리, 재벌개혁은 천천히”

대신 “IMF와의 합의사항인 정리해고 도입은 빠를수록 좋다”('중앙일보' 1월13일치 사설)라는 주장과 “국가운명 가를 재벌개혁은 피해갈 수 없는 구조조정의 현실이지만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같은날 3면)는 기사가 나란히 실리는 현실이다. IMF 합의사항으로 언급된 ‘정리해고’와 ‘재벌개혁’ 문제를 다루며 한가지는 빠를수록 좋고 다른 한가지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모순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언론들은 경제위기에 대한 경보발령 실패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저마다 외환위기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지만 그 혼란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ㅇ전자에 다니는 박광일(31)씨는 “한마디로 짜증나고 돌아버릴 것 같은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국민들이 느꼈을 그 짜증스러움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대선 이틀 전에 한 방송뉴스는 한국의 외환위기는 괜찮다고 했다. 12월 말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했고 대차대조표상으로도 괜찮아 외환위기는 없을 것 같다는 근거도 들었다. 2∼3일 지나니까 나라가 부도날 지경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연말에는 1월12일만 지나면 끄떡없다더니 해가 바뀌니까 또 큰일났다고 한다. 무디스사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할 거라는 보도도 있었다. 점심 때 들었더니 신용등급이 몇단계 하향조정됐다고 하더라.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신문은 우리 경제의 진짜 문제가 뭔지는 관심이 없고 ‘IMF 협약’을 왜 안 따르느냐고 국민에게 윽박만 지르는 것 같다.” 독자들의 볼멘소리다.

주 교수는 “국가가 가진 정보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채 발표된 자료만 받아쓰는 우리의 취재관행, 기자들의 전문성 부족 때문에 언론은 오늘의 혼란을 재촉했다”며 “경제위기시에 '한겨레21'을 포함한 모든 언론은 본질적으로 똑같이 ‘무능’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똑똑한 언론은 어디에 있었던가

'똑똑한' 한국의 언론은 그 당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언론이 국민과 세계로 열린 눈과 귀를 닫고, 공공성이라는 기본책무마저도 잊어버린 채 직접 뛰어들어 분탕질을 치던 곳은 권력이 이동하는 대통령선거의 장이었다.

권력이동의 방향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던 ‘오만한’ 언론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관해서는 처절할 만큼 목소리를 높인다. 새해 들어 ‘구조조정 속도조절’을 언급하는 논설과 사설이 많아진 것은 그 한 단면이다.

재벌신문들이 “정부주도의 밀어붙이기식 대기업정책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문화일보' 1월6일치 1면)거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런 대기업 정책의 시행이 너무 의욕에 넘쳐 범위와 속도에서 현실을 도외시하고 과잉으로 치달아선 안 된다는 점이다”('중앙일보' 7일치 사설)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심지어 언론문제가 포함된 정권인수위원회 사회분과 보고 때는 관련사 기자들이 “'서울신문'과 '연합통신'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을 집중적으로 캐묻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삼성그룹이 재벌개혁방침을 발표한 1월22일. '조선일보'는 1면 머릿기사로 ‘새정권-재계 갈등’이라고 적었다. 새 정권의 빅딜 등 고강도 요구에 대해 재벌들이 ‘원칙은 이해하지만 어렵다’거나 ‘사재헌납 요구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그룹 총수들의 사재를 털어야 한다는 여론에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몰아부치는 것은 어디나 같다. 그러나 언론은 노동자들이 한달동안 일한 대가로 받는 임금을 ‘자발적’이라는 명목으로 10%씩 감축하려는 사용자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왜 그렇게 관대하기만 한 것인가. 임금은 분명한 노동자들의 개인재산인데도 말이다.

언론은 경제주체들의 행태와 위험성, 그것이 가져올 파국적 결과 어느것 하나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린 적이 없다. 위기도래의 신호를 감지하지 못한 채 외국전문가들의 경고와 국제금융기관의 움직임을 전하는 것도 게을리했다. 오히려 무능한 정책당국과 대기업의 논리에 휘말려 장밋빛 환상을 전파하는 데 머물렀다.

언론이 제대로 경보를 발령했다 한들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본분에만 충실했던들 최악은 피했을 텐데…”라는 젊은 기자들의 자괴감은 언론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

송현순 기자

한겨레21 1998년 02월 12일 제1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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