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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가>는 독립군 대표군가였다
“미 제국주의 타도 노래”주장했던 <조선일보>, 이틀만에 슬그머니 정정

남북 정상이 두손을 꼭 잡는 모습에 누구나 뭉클한 감동을 느꼈겠지만, 왠지 곱지 않는 눈으로 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맹목적 반북주의에 젖어 있던 자칭 보수언론인들은 정상회담 내내 텔레비전 화면의 구석구석을 지켜보면서 ‘아직도 적화야욕을 버리지 못한 북의 실체’를 포착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역시 <조선일보>가 정상회담 첫날부터 ‘골수 보수’의 기질을 발휘했다.

<조선일보> 14일치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공항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을 때 북쪽 군악대가 연주했던 음악을 문제 삼았다. 이날치 6면에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정상회담을 평가하고 전망하는 큰 상자기사는 ‘미 타도 <용진가> 연주해 대남전략은 바뀌지 않은 듯’이라는 중간제목을 달고 나왔다. 기사에는 이항구 통일연구회 회장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적혀 있다.

“공항에서 연주된 행진곡은 <용진가>였다. 민족이 모두 힘을 합쳐 미 제국주의를 치자는 가사내용인데,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 위원장과 김 대통령이 악수하는 광경을 보면서 어떤 메시지를 연상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김 대통령을 초치한 것은 미국과의 대결을 위한 민족대단결을 도모하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용진가> 때문에 ‘북한의 기본 대남전략은 변화가 없다’는 게 <조선일보>의 주장이었다. 이날치 3면 기자수첩은 한술 더 뜬다.

“김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첫 만남은 격정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격정이 아니라 현실이다… 김 대통령이 넘어간 군사분계선 양쪽에 100만명 이상의 중무장병력이 대치하고 있고, 평양 순안비행장의 북한 군악대가 연주한 곡은 제국주의를 쳐부수자는 <용진가>였다. 국민과 역사는 김 대통령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차분한 머리를 요구한다.”

그런데 <조선일보>에 <용진가> 기사가 나온 뒤 전주 신흥고의 한 졸업생한테서 “그 노래는 우리 학교 교가”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래서 <용진가> 진실찾기에 나섰다. 먼저 인터넷에 들어가 북한정보 관련 사이트를 뒤져봤더니 소용이 없었다. 뜻밖에도 독립기념관 홈페이지(www.independence.or.kr)에서 ‘독립군가’ 항목을 눌렀더니 <용진가> 설명과 음악파일이 튀어나왔다. 여기서는 <용진가>를 ‘1910년대 만주에서 활약하던 독립군의 대표적인 노래’라고 설명했다. 가사는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침략자 일본제국주의를 치자는 내용이다. 그러고보면 북쪽에서 김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용진가>를 연주한 것은 절묘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제하 민족해방투쟁은 남북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정신적 지적재산이다. 이는 남북공동선언 제1항의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

<조선일보>는 남북정상회담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용진가>를 미 제국주의를 치자는 노래로 왜곡시킨 지 이틀 만에 다시 ‘독립군가’로 슬쩍 바꿔놓았다. 16일치 사회면에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3일 평양공항에 도착했을 때 북한 군악대가 연주한 독립군가 <용진가>가 전북 전주 신흥고의 교가와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는 1단짜리 화제성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는 “1900년에 설립된 우리 학교는 일제시대에 민족의식이 강한 정주 오산학교와 평양 숭실학교 출신 교사들이 많았는데, 이분들이 독립군가를 교가로 도입했다”는 신흥고 역사교사의 설명까지 덧붙였다. 어물쩍 ‘정정’을 한 셈이었다.

권혁철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nura@hani.co.kr

한겨레21 2000년 06월 29일 제3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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