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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인간의 제물인가
시민단체서 동물권 지키려는 행동 돌입… 실험 동물의 희생막는 구체적 노력 호소

(사진/동물 실험은 의학연구에서 필수적인 절차로 간주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80명이나 되는 과학자들이 위험천만한 편지를 받았다. 이른바 ‘면도날 편지’가 배달된 것이다.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동물을 이용한 과학실험에 반대하는 극렬 행동주의자들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편지에는 사람들이 편지봉투를 뜯을 때 손가락이 지나게 될 만한 위치에 교묘하게 면도날이 붙어 있었다. 단순히 편지에 면도날을 동봉해 경고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제로 상처를 입히기 위한 일종의 테러행위로 간주되었다. 수년 전 과학기술의 지나친 발전을 막기 위해 과학자들과 연구단체에 폭탄 편지를 발송해서 한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이 일을 소재로 한 영화까지 제작되었던 유나버머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다행히도 이 편지를 받은 과학자들 중에서 실제로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옥스퍼드대학의 인지신경과학센터의 콜린 블랙모어 소장의 비서가 편지를 뜯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블랙모어는 12년 전에 새끼고양이를 이용해서 시각(視覺)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처음 ‘동물권’(animal right) 행동주의자들의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그뒤 그는 여러 차례 폭탄 테러를 경고하는 편지와 그의 아이들을 납치하겠다는 위협까지 받았으며, 실제로 집이 파손된 적도 있었다. 현재 그의 아이들은 24시간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고, 블랙모어 자신도 경찰의 보호 없이는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편지 사건이 특히 동물 실험 과학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까닭은 연구단체에 대한 경고나 위협 차원이 아니라 과학자들 개인에게 배달되었다는 점이다. 위스콘신 영장류 연구센터 소장인 W. 켐니츠는 항의시위자들이 집에까지 찾아와 밤새 촛불시위를 벌이고 차에 왁스로 경고문을 써놓는 바람에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동물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 방법도 동원

(사진/서울대 유전공학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실험쥐)

그외에도 지난해 동물해방전선(Animal Liberation Front, ALF)은 미네소타대학,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대학 등을 대상으로 연구소와 장비에 상당한 손실을 입혔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그 손실액은 75만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가령 웨스턴워싱턴대학의 경우에는 연구용으로 사육하던 쥐와 토끼를 도난당했고, 캘리포니아대학은 동물 실험으로 얻은 상당량의 데이터를 잃었다. 이들 대학의 연구소들은 알츠하이머를 비롯해서 뇌와 연관된 질병을 연구하기 위해 많은 실험 동물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해방전선은 장비나 데이터, 실험 동물에 대해서는 불법적인 행동도 불사하지만 과학자들에 대한 테러와 같은 폭력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동물권 보호를 주장하는 행동주의자들의 전략이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치닫고 있는 데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동물권 보호론자들의 움직임이 모두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이들의 활동은 대부분 합법과 비폭력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미국의 거리 곳곳에서는 쇠수갑에 사지가 묶인 채 생체해부를 당하고 있는 가련한 원숭이나 실험용 튜브를 몸에 매달고 있는 쥐와 같은 실험 동물들의 애처로운 처지를 생생하게 폭로하는 사진을 들고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이것이 생체해부이다!”라고 외치는 평화시위자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야생생물보호기금(World Wildlife Fund)의 한 분과이며 미국에서 가장 크고 권위있는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 HSUS)는 지난 4월20일 과학자들과 정부관계자에게 오는 2020년까지 연구에 사용될 2천만 마리에 달하는 실험 동물들의 고통과 비참한 처지를 종결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이 단체는 그동안 미국 정부가 발행한 보고서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자체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실험 동물들이 받는 고통이 턱없이 과소평가되거나 의도적으로 통계에서 누락되었다는 증거를 밝혀냈다.

가령 미국의 50위 안에 들어가는 비영리 연구소들은 1996에서 1997년까지 마취 등 실험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아무런 조처도 없이 이루어진 실험(농무성 기준에 따르면 E등급에 해당하는)의 비율이 1% 미만이라고 보고했지만,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보고된 사례 이외에도 동물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조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많은 실험사례들을 찾아냈다. 따라서 이 단체는 동물보호론자, 과학자, 정부관계자가 참여해 공동으로 현재의 동물 실험 실태를 조사하고 2020년까지 모든 실험 동물들이 당하는 고통을 종결시키기 위한 단계적인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시한 못박은 시민단체들 "인권이 소중하듯…"

(사진/"동물의 권리를 인정하라" 야생동물들은 불법 밀렵으로 붙잡혀 실험실에서 죽어가기도 한다)

그러한 단계적인 조처들은 대략 이렇다. “우선 올해 안에 휴메인 소사이어티가 중심이 되어서 실험 동물 수의사, 동물행동학자, 생리학자, 신경학자, 동물 마취학자, 철학자 등이 포함되는 국제적인 전문가 그룹을 소집해서 실험 동물들이 받는 고통에 대한 전문적인 보고서를 작성한다. 동물을 이용한 실험을 할 때 연구기관들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행동지침과 수칙을 개발한다. 1985년에 제정된 동물보호법(Animal Welfare Act)의 규제 대상 동물의 범위를 쥐와 조류에까지 확장한다.”

동물권 보호론자들의 주장은 앞에서 소개한 폭력적 행동주의에서 제도적인 대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의 폭이 매우 넓다. 이 가운데서도 2020년까지를 목표로 설정한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체계적인 전략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동물권이라는 말 자체가 무척 생소한 우리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움직임들이 자칫 “인권도 못 지키는 판에 무슨 배부른 소리냐”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얻을 수도 있지만, 이미 중요한 사회적 움직임으로 뿌리내린 외국의 동물권 보호 운동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여러 가지 사실을 시사해준다. 크게 본다면 이러한 움직임은 인간을 특권적인 종(種)으로 설정하고 가장 가까운 친척인 영장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들을 인간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자원으로 간주하는 편협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지구를 공유하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생태적 관점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쇼비니즘적인 인간중심주의가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도 왜곡되게 투영되면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인종과 종교 탄압 등의 비극적 결과를 낳은 것도 이러한 배타적 인식이 동물만을 대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간사회 내에도 스며들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권과 동물권이 더이상 별개의 사안이 아닌 셈이다. 그리고 그동안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거의 안하무인 격으로 자행돼온 갖가지 폭력이 더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우리는 실험 동물의 사용실태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한겨레21 2000년 06월 08일 제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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