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an error occurred while processing this directive]
 

“청룡여단서 양민학살 조작은폐”
전 해병 헌병대 수사계장 증언… “퐁니촌 사건 베트콩 소행으로 조서 받아라” 지침 내려와

(사진/<한겨레21> 306호 표지이야기를 보는 퐁니촌 생존자 응웬 수(72·왼쪽)와 그의 아들 응웬 탄 껴(44). 응웬 수 역시 학살 직후 친척들의 주검을 둘러메고 1번 국도로 달려갔다)

61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된 퐁니촌 양민학살 사건(68년 2월12일).

<한겨레21>은 306호 표지이야기를 통해 당시 이곳에서 작전을 했던 해병 제1대대1중대 장교들의 증언을 전한 바 있다. 당시 2소대장이었던 이상우(58)씨는 자신이 중앙정보부에서 수사받은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사건 직후 해병 헌병대에서 조사받은 기억도 덧붙인 바 있다. <한겨레21> 306호가 배포되자, 이번에는 그를 조사했다는 해병 헌병대 출신 참전군인이 전화를 걸었다. 당시 청룡여단 헌병대 수사계장이었던 성아무개(63·당시 계급 중사·진해 거주)씨. 그는 “사건의 진실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연락했다”고 말했다.

1968년 4월 초 어느 날. 헌병대장(당시 박영길 소령)이 성씨를 조용히 불렀다. “양민학살 사건이 있다고 진상을 조사하라고 하는데 지침에 따라 조서를 받아와라.”

헌병대장이 내민 ‘지침’의 내용은 이랬다. ‘청룡부대처럼 위장복을 입었지만 청룡부대로 꾸민 베트콩들의 소행이다. 청룡부대는 절대 양민을 학살한 일이 없다.’ 진실을 밝히는 ‘진상조사’도 아니고 단순히 ‘조서’만을 받아오라고 했다. 성씨는 “헌병대장도 여단에서 지침을 받아왔다”며 “양민학살이 있었지만 사실을 은폐시키라는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내 가족이 그렇게 죽었다면…"

(사진/쿠앙남성 퐁니마을. 68년 2월 당시 멀리 보이는 당산나무 앞에서부터 학살이 지삭됐다고 한다. 그 뒤로 1번 국도를 달리는 버스가 보인다)

당시 헌병대 수사요원은 모두 6명. 대대에 1명씩 파견돼서 여단 본부에는 성씨와 하사관 1명이 근무했다. 보름 남짓 2명이 부대를 직접 찾아가 새벽부터 밤까지 조서를 받았다. 장교와 사병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중대원이 대상이었다. 한국에 이미 귀국해 있던 김석현 1중대장은 물론 홍성환 제1대대장까지 베트남에 다시 불러들였다. 그는 <한겨레21> 306호에 등장했던 2소대장 이상우씨의 이름도 기억했다.

진술 내용이나 조서의 내용은 짤막했다. “언제 어디서 작전을 했으나 양민학살 사실은 없고 작전만 하고 곧바로 퇴각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다면 베트콩이 했을 것이다….” 성씨도 그런 진술을 토대로 양민학살을 부인하는 내용으로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조사 기록은 여단본부를 통해 한국의 해병대사령부로 보냈다.

그러나 그가 기억하는 사건의 진상은 다르다. “한국군이 마을 옆을 지나가는데 저격을 받아 아군이 쓰러졌다. 그러자 마을을 포위하고 공격해 마을 주민들이 집단학살을 당했다. 그때 살아남은 마을 주민들이 쿠앙남성청에 진정을 했고,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청룡여단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성씨는 “청룡부대에서 자체적으로 사건을 은폐한 것으로 보인다”며 “나 역시 왜곡된 조서를 작성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 진실된 조사를 하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아무리 상부의 지시가 있더라도 “진상을 밝히겠다”고 용기있게 대처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죄책감이 든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두명이 아니라 수십명의 민간인이 무고하게 죽은 사건이었다. “분명히 위에서 잘못한 것이죠. 당시에 진실을 밝혀야 했는데. 내 가족이 그렇게 죽었다고 한번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봐야 하는데….”

(사진/베트남전 당시 해병 헌병대 수사계장으로 근무할 때의 성씨 모습. 68년 호이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성씨는 요즘도 해병전우회에서 나온 해병 배지를 옷깃에 달고 다닌다. 아들 2명도 모두 해병대 장교로 보냈다. 아들들한테 베트남전 때 해병대가 군기도 엄했고 전투도 잘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청룡여단에서 양민학살을 은폐했던 일을 말한 적은 없다고 했다. 성씨는 <한겨레21>에 그런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아무리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사실은 사실대로 규명돼야 하고, 죽은 원혼을 달래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피해보상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해=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한겨레21 2000년 06월 01일 제3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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