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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군인들, 의미있는 첫걸음!
월남참전전우복지회 베트남 민간인 집단사살 현장에서 사상 첫 위령비 기공식

(사진/희망의 삽질. 2·25사건 위령비 기공식 마지막 순서로 월남참전전우복지회 회원들과 쿠앙남성 하미마을 주민대표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가운데 노란 옷 입은 이가 청하 큰 스님)

원혼들은 이제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 강산은 세번이나 변했지만 그들의 유골은 거두어지지 못한 채 땅 속에 어지러이 뒤섞여 방황해야만 했다. 원한과 저주, 눈물과 탄식만이 그 공간을 휘감아 왔다. 그러나 마침내 안식과 평화의 작은 빛이 이들에게도 찾아왔다. 정확히, 32년 하고도 3개월 만에.

베트남의 중부지역 항구인 다낭에서 호이안쪽으로 30분 달리면 ‘따이한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북쪽 방향으로 동해를 끼고 다시 20분. 쿠앙남성 디엔반현 디엔증사 하미 마을의 옥빛 해변이 까마득하게 펼쳐진다. 지난 5월2일 아침 8시. 대형 전세버스에서 30여명의 한국인들이 내렸다. 잠시 옷매무새를 다듬은 이들은 바다를 뒤로 하고 논 사이의 오솔길로 들어섰다. 뜨거운 태양 아래, 검은 양복으로 복장을 통일한 이들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 묻어났다.

지하의 유골들은 왜 잠들지 못했는가

(사진/추모사를 하는 월남참전전우복지회 김문구 이사장)

5분이나 걸었을까. 물소떼가 그들을 비켜 논으로 사라진 뒤, 옥수수밭 사이로 깃발이 나부꼈다. 행사장이다. 먼저 도착해 있던 100여명의 마을 주민들이 머나먼 땅에서 온 ‘따이한’들을 박수로 맞았다. ‘68년 2·25사건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 기공식’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행사를 주최한 사단법인 월남참전전우복지회 김문구 이사장(52·베트남전쟁 추모제 추진위원장)은 비감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베트남전이 종전된 지 25년이 흘렀지만 양국의 영혼들은 아직까지 안식을 찾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맴돌고 있습니다. 이제 21세기엔 우리 모두 과거를 정리하고 용서와 화해로 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성호 위령비 건립위원장(46·주식회사 지한정보통신 대표이사)은 대회사를 통해 “때늦은 감이 있으나 전쟁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어 “인간환경을 파괴하는 전쟁은 이제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져야 할 것임을 다시한번 느낀다”는 말로 대회사를 마무리했다.

(사진/답사를 하는 생존자 대표 응웬 토이)

생존자 대표로 답사를 한 응웬 또이(55)는 “2·25사건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 가족들에게 고통스런 일”이라는 말로 서두를 꺼냈다. “당시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향을 지피고, 과거 일부 한국군 병사의 잘못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해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모든 희생자 가족들을 대표해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청하(73) 큰스님과 이성호 위령비 건립위원장, 김문구 이사장 등 월남참전전우복지회 관계자들은 행사장 오른편 앞좌석에 자리했다. 왼쪽편엔 디엔반현 인민위원회 응웬 민 훙(50) 부주석과 디엔증사 인민위원회 응웬 반 하이(43) 주석 등 베트남쪽 관계자들이 자리잡았다. 그 뒤로는 2·25사건의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이 앉았다. 월남참전전우복지회쪽 인사들이 잇따라 추모사와 대회사를 낭독했지만, 그들은 담담한 얼굴로 간간이 박수만 칠 뿐이다. 위령비를 짓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그것은 생존자 대표의 말대로, 악몽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었다.

시삽 현장의 오열

(사진/기공식이 끝난 뒤 2·25사건 생존자 중 하나인 응웬 투 아인(향든 이)이 다른 생존자와 함께 울부짖고 있다)

그렇다면 2·25사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1968년 2월25일(음력1월26일), 그날 이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새벽부터 하미마을의 따이(西), 중(中)촌을 포위한 청룡여단 2개 중대는 7시경부터 마을 주민들을 체포해 네 지점에 모은다. 응웬 디에우(당시 75살)의 집 앞의 공터에 45명, 레디 토아이(당시 47살)의 땅굴에 16명, 까오티드옹(당시 65살)의 집 앞 대나무밭 주변에 16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령비 기공식 현장인 응웬 빈(당시 75살)의 집 앞에 가장 많은 74명을 모아놓는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이들은 대부분 노인과 여성, 어린이였다. 그러나 한국군들은 이들을 향해 다연발총과 박격포를 쏘고, 수류탄을 무차별 던졌다고 한다.

위령비 기공식 현장인 응웬 빈의 집에서는 그와 응웬 티 리에우(당시 38살)가 서랍장에 몸을 숨겨 살아남았다. 팜티 호아(당시 40살)는 다리가 잘려나간 상태에서 기어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들을 포함해 하미 마을 전체의 생존자는 20여명이었고, 이날 사망자는 모두 136명이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뒤에 일어난다. 한국군이 집단사살 직후 다시 불도저를 끌고와 시신이 널려 있던 현장을 깔아뭉갰다는 것이다.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시신들은 다시 한번 땅과 함께 갈기갈기 파헤쳐졌다. 덕분에 하미 마을 주민들은 30여년 동안 한국군에 대한 사무치는 원한을 새기고 있었다. 한국의 참전군인 조직이 처음 이곳에 위령비를 세우겠다고 하자 일부에서 반대 움직임이 일었던 것은, 생존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의 정서를 말해준다.

(사진/전우복지회 회원들과 생존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얼싸안고 하나가 됐다)

월남참전전우복지회는 이날 디엔증사 인민위원회 응웬 반 하이 주석에게 미화 2만5천달러(우리돈 2800여만원)를 기탁했다. 이 돈은 위령비를 세우고 주변 진입로에 화원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현장 지하에 뒹굴고 있는 유골을 수습하는 데도 쓰일 예정이다. 응웬 반 하이 주석은 감사말을 통해 “지난 수년간 우리 주민들 모두는 피해자 가족들과 한마음으로, 해마다 참관하여 향불을 올릴 수 있는 위령비 건립을 염원해 왔지만 당장 주민 생계문제를 해결하기 바빠 이 염원을 실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 주민들은 폭탄과 총탄으로 황무지가 되었던 이 땅을 푸른 산천으로 일구어냈습니다. 용서와 아량, 관용의 마음은 베트남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과 인도주의를 다져 왔으며, 평화 속에서 살고 싶다는 갈망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언제나 미래를 위해 과거를 닫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베트남 민족의 선의이며, 고귀한 품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공식 마지막 순서는 시삽이었다. 월남참전전우복지회와 디엔증사 인민위원회, 생존자 대표들이 삽자루를 쥐고 흙을 던졌다. 절망을 털어버리고 새롭게 희망을 준비하는 시간. 그러나 오열이 터져나왔다. 희생자 가족의 한 사람인 응웬 투 아인(여·55)이 뛰쳐나와 시삽자리를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바로 이 자리야. 여기서 다 죽었단 말이야. 엉엉.” 그는 이 위령비 기공식 현장에서 동생과 언니와 어머니를 잃었다고 했다. 자신 역시 한국군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아 신경까지 다쳤다는 그를 김문구 이사장이 말없이 끌어안았다 “무엇을 도와야 이들의 상처를 좀더 아물게 할까요. 어렵게 살아가는 생존자들의 생활비를 지원할 구체적 방법을 모색중입니다.” 김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전우복지회 회원들이 이번 기공식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며 “8월30일로 예정된 위령비 준공식 때도 거의 전원이 참석할 것을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참전군인들이 참 존경스러워요”

(사진/월남참전전우복지회 위령비 기공식)

위령비 기공식이 끝난 뒤엔 디엔증사 인민위원회로 장소를 옮겼다. 이곳에선 2·25사건 생존자에 대한 선물증정식이 진행됐다. 당시 사건 생존자 19명 중 18명이 참석했다. 월남참전전우복지회 회원들이 번갈아가며 선물꾸러미를 건넸다. 빨간 종이가방 속에는 청바지와 홍삼, 티셔츠, 시계, 색연필이 담겨 있었다. 생존자들은 활짝 웃으며 월남참전전우복지회 회원들과 포옹했다. “깜온.”(고맙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 해변에서 두 나라 사람들은 팩소주와 베트남 전통술을 나눠마시며 연신 ‘쭉쑥케에’(건배)를 외쳤다. 용서와 화해를 다짐하며 어깨동무를 하기도 했다.

하긴 그렇다. 위령비를 세워주고 선물을 주는 시혜를 베푼다고 해서 아픈 과거가 몽땅 잊혀질 수는 없다. 분위기에 취해 호기롭게 ‘건배’를 외친다 하여 그 상처가 모두 아물 수는 없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월남참전전우복지회의 노력은 한국과 베트남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아주 작지만 소중한 첫걸음인 셈이다. 위령비 기공식장에서 행사를 구경하던 열여덟살 소녀 응웬 티 수언 히우가 수줍게 던진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했다. “전 학살도 모르고 전쟁도 몰라요. 그러나 참전군인들이 뒤늦게나마 오셔서 이러는 게 참 존경스럽답니다.”



  • 인터뷰/"뜨겁게 환영합니다"
  • 인터뷰/"너무너무 고마워"
  • 베트남이 심상치 않다


    쿠앙남 하미 마을=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한겨레21 2000년 05월 18일 제3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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