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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공용 '워드' 만든다
삼성-조선콤퓨터 SW공동개발센터 문 열어… 사이버 남북 통일 첫걸음

(사진/지난 3월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삼성-조선컴퓨터소프트웨어공동협력개발센터 개소식. 삼성이 예산과 시설을, 북한이 인력을 제공한다)

남북한 사이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공동개발, 인터넷 교류 등 첨단 정보통신분야에서의 협력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삼성은 지난 3월22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의 조선콤퓨터센터와 함께 ‘삼성-조선콤퓨터 소프트웨어 공동협력 개발센터’의 문을 열었다. 삼성이 9개월간 공들인 끝에 성사된 것이다. 개발센터는 올해 안으로 남북단일 워드프로세서 개발을 목표로 △문서요약 △리눅스 응용 △무선단말용 게임 △휴대폰용 중국어 문자인식 소프트웨어 등 군사·산업용이 아닌 민간부문에서 활용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한다. 삼성은 이 개발센터에 당분간 인력은 파견하지 않고 비용만 73만달러(8억1천만원)를 부담하고, 전문 프로그래머를 북한쪽에서 10명을 파견한다.

북한의 노하우 이용 중국시장 공략

이번 남북공동 소프트웨어개발사업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남북단일 워드프로세서개발이다. 삼성은 자체 개발해 그동안 내부문서 작성용으로 써온 한글워드프로세서 ‘훈민정음’을 이 사업의 뼈대로 삼는다. 훈민정음을 북한의 기존 워드프로세서인 ‘창덕’ 등과 호환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아예 둘을 합쳐 단일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동개발작업이 이르면 6개월 안에 끝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양쪽이 소스프로그램을 이미 교환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정도 기간이면 충분히 단일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삼성전자보다 앞서 ‘한(아래한)글’을 만든 한글과컴퓨터도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북한쪽과 교섭을 벌여왔으나 결국 삼성전자에 선수를 놓치고 말았다.

이번 남북공동 소프트웨어개발은 삼성이 비용을 지불해 북한의 인력 및 개발 노하우를 활용하는 일종의 ‘용역개발방식’이다. 공동개발한 소프트웨어는 중국 등 제3국 시장에도 진출하게 된다. 중국어 문자인식 소프트웨어개발사업은 북한의 오랜 노하우를 활용해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대표적 보기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여태까지 대북사업은 기술교류 지향적이라기보다는 북한의 싼 임금을 활용하는 단순 임가공사업이나 일방지원성사업이 주류를 이뤄왔다”면서 “하지만 북한과의 소프트웨어공동개발사업은 경제적 실리를 철저히 나눠갖는 ‘윈-윈사업’이라는 데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남북한간의 경제분업논리에 충실한 사업이라는 이야기다.

북한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 상당 수준

(사진/평양 제1고등중학교에 있는 '전자계산기' 실습실. 북한의 각급 학교에서는 컴퓨 터 교육 바람이 불고 있다)

북한은 소프트웨어개발에 주력해 고급인력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어려운 경제사정과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 규제 등 여러 가지 제한 때문에 첨단 컴퓨터장비의 도입에 어려움을 겪자 하드웨어쪽보다는 지식산업인 소프트웨어개발에 주력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자본이 없어도 창조력만 있으면 휼륭한 제품을 얼마든지 생산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삼성전자의 협력상대인 조선컴퓨터센터(KCC)는 1990년 10월에 세운 북한의 대표적인 응용소프트웨어 개발기관이다. 창립당시 10명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100명을 넘는 전문인력과 30여명의 직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을 다녀온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프트웨어개발에 능한 고급인력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선진국 수준과 비교해서는 아직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면서 “앞으로 함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실력이 급격하게 성장할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연구인력은 대개 20대 후반, 30대 초반들이며, 영재급 10대들도 적잖게 포진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분야는 크게 데이터베이스, 탁상 출판 및 응용소프트웨어다. 이곳에는 1인당 평균 1.5대의 컴퓨터가 지급된다. 연구원이 쓰는 컴퓨터는 대개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IBM 호환기종, 워크스테이션도 많은데 대개 미국의 선(SUN)사 제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센터가 인공지능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온라인 바둑프로그램인 ‘은별’은 98년 열린 일본 포스트(FOST)배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서 당시 챔피언이던 ‘천하수담(일본산)’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해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일본기원으로부터 3급 인증서를 획득한 유일한 바둑소프트웨어로, 자동학습기능을 갖추고 있어 매번 다른 수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박찬모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북한이 개발한 몇몇 프로그램은 인공지능, 퍼지이론, 영상처리, 입체영화, 문자인식, 기계번역 등 최신 정보기술을 활용한 제품이 많다. 북한의 소프트웨어기술이 상당수준에 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불모지대나 다름없는 북한과의 인터넷 협력사업도 싹을 틔우고 있다. 이 분야에 뛰어든 기업만도 10여 군데에 이른다. 현대, SK 등 대기업을 비롯해 시스젠(대표 권오홍), 유니온 커뮤니케이션(대표 정영철), 조선인터넷(대표 유세형) 등 중견기업들도 가세해 불꽃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인터넷을 이용한 남북교류는 크게 세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은 북한이 개설해 놓은 인터넷사이트에 방문하거나 회원가입을 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베이징에서 운영중인 것으로 알려진 조선인포뱅크(www.dprkorea.com)가 대표적인 예. 이 사이트의 단순 방문은 별 문제가 없지만 회원으로 가입해 북쪽이 심어놓은 내용들을 속속들이 보려면 정부로부터 북한주민접촉 승인이 필요하다.

둘째는 북한의 인터넷사이트와 연계해 사업을 하는 벌이는 경우다. 북한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www.dprk.com)를 운영하려는 조선인터넷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 사이트는 북한뉴스, 북한물품구입, 이산가족찾기, 북한동호회만들기, 북한벤처 구인구직, 인터넷 남북회담 촉구서명운동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산가족찾기, 남남북녀채팅, 통일날짜맞추기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해 인터넷에 올릴 예정이다. 얼마나 실질적인 사이버 교류가 이뤄질지는 북한쪽의 호응에 달려 있다.

셋째는 남쪽 기업이 인터넷을 이용해 북쪽과 국내 소비자를 연결하는 것으로 단순히 인터넷을 판매방식의 하나로 이용하는 것이다. 유니온 커뮤니케이션(www.unionzone.com) 등이 인터넷사이트를 열어, 소비자로부터 북한물품의 구입신청을 받은 뒤 상품을 원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밖에도 북한상품전문 쇼핑몰, 임가공 설비 사이버 전시, 북한관련 비즈니스 계약 중개, 미러사이트개설을 통한 북한관련 각종 정보 및 뉴스 제공 등이 여러 기업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북한은 현재 해외에 웹사이트를 설치 운영하면서 북한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에는 지난해 당 창건기념일인 10월10일에 조선인포뱅크( www.dprkorea.com)를 개설했고, 일본에는 중앙통신(www.kcna.co.jp)사이트를 열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직도 인터넷의 도입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의 인터넷 국가코드(kp)로 등록된 호스트도 아직 없다. 다만 국제연합개발계획(UNDP) 등 평양주재 국제기구는 북한당국의 허가를 받아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관련 전문가, 정보부서 관계자, 군 고위층 등은 인터넷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정책적으로 허용한다면 빠른 속도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통일부의 평가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하루 2시간 넘게 웹서핑을 하고 있다는 게 북한 내부소식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귀띔”이라면서 “최근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각종 사업개발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권력부서 사이에서는 전자결재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이는 정보통신분야 기술개발에 정권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것을 지도부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찬모 포항공대 교수도 “북한이 비록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터넷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첨단기술과 경제발전에 인터넷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인터넷 도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도 처음에는 체제에 미칠 역풍을 우려해 인터넷 도입을 꺼렸으나 결국 받아들여 오히려 첨단 정보통신 발전의 발판으로 삼았다”며 “이런 중국의 사례는 북한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도시간 광섬유케이블 이미 설치

박 교수에 따르면 북한도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김일성대학 김책공과대학 조선컴퓨터선터 등을 중심으로 근거리통신망(LAN)을 구축해 이를 연결한 네트워크간 통신을 사용해왔다. 특히 96년부터는 뒤떨어진 통신인프라를 현대화하기 위해 전화자동화, 디지털화, 전자계산기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해왔으며 이미 평양 사리원 등 주요 도시간 통신선로를 광섬유케이블로 바꿨다. 전국적인 컴퓨터 통신망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북한 내부에서의 전자메일 왕래나 주요 기관의 홈페이지 활용도 가능하다는 게 박 교수의 진단이다. 남북한이 사이버공간에서나마 통일을 이룰 날도 멀지 않아보인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한겨레21 2000년 04월 06일 제3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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