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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지 못한 ‘히빠리’의 죽음
기지촌 떠돌던 60대 매춘여성의 기막힌 인생… 미군범죄로 추정돼도 수사 장벽 수두룩

(사진/주한미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기지촌 일대에서는 미군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냄비에는 먹다 만 동태찌개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포마이카 장롱은 옷장 겸 찬장이었다. 침대 위에는 담요와 양동이 등 올망졸망한 집기가 두서없이 올려 있었다. 두평 반 남짓한 공간에서 넉넉한 것이라곤 화장대 위에 놓인 색색의 립스틱과 매니큐어, 로션뿐이었다. 창 밖으로 기지촌의 허름한 지붕이 시야에 들어왔다.

“난, 무서워서, 끔찍스러워서 그 방에 올라가 보지도 못해요.” 3월16일 오후, 대문을 열어준 집주인여자는 대뜸 앓는 소리부터 냈다.

전날 밤까지 미군 상대하다 맞아 죽어

(사진/청각장애인으로 기지촌에서 생을 마감한 서정만씨의 장례식)

서정만씨는 3월11일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의 한 허름한 옥탑방에서 싸늘하게 식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팬티바람으로 침대에 모로 누운 채 발견된 서씨는 양눈과 입가가 심하게 멍들어 있었고, 치아 두개가 부러져 있었다. 침대 밑으로는 피가 흘러 있었다.

서씨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미군의 범죄로 추정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이 탓이다. 그는 우리 나이로 올해 예순여덟, 이 동네의 마지막 ‘히빠리’(클럽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 매춘하는 나이든 여성을 말하는 은어)였다. 숨진 채 발견되기 전날 밤에도 그는 ‘일’을 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날 밤 11시50분께 서씨는 키 180cm에 보통체격인 한 흑인과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와장창하는 소리가 두어 차례 들렸다고 한다. 부검 결과 갈비뼈가 모두 부러져 있었고, 폐출혈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직접적인 사인은 흉부와 두부손상으로 인한 ‘속발성 쇼크’. 말하자면 맞아서 죽은 것이다.

방 안은 현장감식 때 어지럽혀진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벽에 걸린 사진틀에는 사진 두장이 끼워져 있었다. 60년대 할리우드 영화배우 모양의 자세를 취한 여인의 상반신 사진과, 무릎 위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고 날씬한 자세를 뽐내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30, 40대 무렵의 서씨였다. 주말이면, 짙은 화장으로 나이를 감춘 채, 술취한 미군을 잡기 위해 어두컴컴한 길모퉁이에 서 있던 예순여덟살된 여성과 사진 속의 여인이 동일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최근에 주민증 만들어…방세도 석달째 밀려

서씨가 이 동네에 들어온 것은 5∼6년 전. 하지만 그동안 아무에게도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이웃들은 말을 잘 못하는 ‘벙어리 아줌마’로 그를 기억할 뿐, 이름도 나이도 몰랐다. 기지촌의 여성들은 나이를 적어도 10살쯤 낮춰 이야기한다. 영업을 위해서. 서씨의 경우도 자신을 철저히 감췄다. 이웃들이 그의 이름과 나이를 알게 된 건 숨지기 불과 5일 전이었다. 매춘여성 자활활동을 돕는 ‘두레방’ 식구들의 설득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들면서다.

“힘들게 지냈지만, 누구에게도 공짜로 뭘 얻지 못하는 깔끔한 성격이었어요. 두레방 식구들이 연탄을 가져다준 일이 있는데, 그때도 집에서 쓰던 볼펜 뭉치를 사무실에서 쓰라며 선물로 줄 정도였어요. 사람들 말로는 저 아랫동네에서 방 얻어 살 때는 장사가 곧잘 되었다고 하던대…”

그의 집에서 가까운 한 클럽 주인의 말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단골로 찾아와 방값을 내주곤하는 미군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서씨가 지난해부터는 주변에 1만원, 5천원씩 돈을 빌려가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한달에 공과금 합해 10만원씩 내던 방값도 석달째 밀려 있었다. 이웃들은 동네가 쇠락해가는데다 서씨 본인의 기력도 달렸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서씨는 주로 미군들이 흥청대는 주말에만 일을 했다. 쌀 떨어지고 기름 떨어지면 클럽의 모퉁이에 서서 기다렸다가, 약이나 술에 취한 미군이 혼자 나오면 그를 상대로 ‘거래’하는 전형적인 ‘히빠리’의 삶을 산 것이다. 서씨가 받았던 대가는 통상 화대의 3분의 1도 안 되는 10∼20달러가량. 인근 동두천의 60대 매춘여성들이 받는 금액도 이와 같다.

“어떻게 애를 그렇게 때릴 수가…, 어떻게 그리 험하게 살았는지…. 어릴 때부터 너무 예뻐 다들 영화배우하라고 할 정도였는데. 영안실에서 들춰보니 얼굴이 온통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더라고. 나는, 죽어서 부모님 얼굴볼 낯이 없어요. 하이고 참, 하느님.”

50여년 동안 가족도 찾지 못하고 지내

(사진/여성들이 미군범죄 근절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씨의 언니 서아무개(73)씨는 전화통을 붙잡고 울먹였다. 전북에서 6자매의 막내로 태어난 서씨는 어릴 때 병을 앓아 청력이 마비된 청각장애인이었다. 서씨 가족은 황해도 연백에서 인천으로 피난왔다. 서씨의 언니는 서씨가 부모와 함께 인천에서 살다 집을 나갔는지, 피난오는 길에 헤어졌는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 서씨가 중학교를 마칠 때쯤, 집안이 갈가리 찢어졌다고만 기억한다. 그들의 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연명했다고 한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서씨는 가족을 찾지 않았고 가족도 그를 찾을 길 없었다.

“의정부 들어가기 전에는 경기도 부평하고 서울 후암동 같은 데서 살았나 봐. 계속 미군들 있는 곳으로 다닌 것 같아. 그러던 것이 지난해 연락이 왔더라고. 돈이 없어 굶고 있다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한번도 연락한 적 없던 나를 찾았겠어. 12월엔가, 걔한테 한번 찾아간 적이 있어요. 나도 이제 자식들 다 키웠으니 함께 가서 살자 해도, 한사코 싫다며 내 등을 떠밀더라고. 그러더니 그 지경이 되었어.” 서씨의 언니는 끝내 전화통을 붙들고 울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클럽 골목에 미군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곳은 행정명칭보다는 캠프 스탠리의 기지촌, ‘뺏뻘’로 더 많이 불리는 곳이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미군 미사일 기지가 들어서 있을 때에는 수십개의 클럽이 성업을 했지만, 88년 헬기장 기지로 바뀌면서 기지촌 규모도 점점 줄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13개 클럽에 러시아, 필리핀 여성들까지 모두 합해 100여명의 아가씨들이 있고, 한국 여성은 대부분 40대가 넘은 사람들이다.

“나이든 여자를 싼값으로 찾는 미군들은 대부분 질이 안 좋아요. 간혹 돈없는 미군들일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라도 정상적인 섹스가 아니라 ‘특별한 서비스’를 요구하죠. 그러니까 프리랜서(클럽에 소속 안 된 여성을 기지촌 여성들끼리 부르는 말, 히빠리가 일본말이라서 그렇다고 한다)들은 변태들을 만나거나,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요. ‘벙어리 아줌마’도 아마 그런 노인들만 찾는 놈한테 당한 거 같아요.”

클럽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한 40대 여성의 말이다. 서씨는 3년 전쯤에도 사고를 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한 흑인에게 화대를 빼앗기면서 맞아 머리를 심하게 다친 것이다. 그때 앞니 두개가 부러져 의치를 해넣었다. 이 사건은 동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사건이 또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른다.

용의자 찾더라도 신병 인도도 어려운 현실

수사는 지금까지 크게 진전된 게 없다. 의정부경찰서 수사본부의 한 관계자는 “사건 정황으로 볼 때 미군범죄임이 틀림없지만 (서씨가) 암행 매춘을 한데다, 수사범위가 한정돼 있어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한다. 다만 “싼값에 비정상적인 걸 원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대상 용의자의 폭을 좁힐 수 있고, 캠프 스탠리의 미군 수가 2천여명 정도여서 범인을 잡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서씨의 몸에서 검출된 분비물과 손톱 밑의 이물질에 대한 정밀 감식결과는 3월23일께 나온다. 그러나 감식결과가 나와도 범인을 잡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한 약관에 따라 실제 수사권은 미군에게 있기 때문이다. 미군범죄와 관련해서 가장 문제가 되는 독소조항은 한국 수사대는 미군이 ‘요구’하면 전속관할권과 재판권을 포기해야 하고, 결정적인 용의자라 해도 미군이 ‘허락’하지 않으면 신병을 인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기지촌 매춘여성의 사망사건이 계속 미제 상태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난해 1월 동두천 보산동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되었던 신차금(46)씨의 경우, 전날 밤 그에게 미군을 소개해줬던 펨프가 용의자의 얼굴을 기억했고, 주검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정액까지 검출됐지만 1년 넘도록 범인을 못 잡고 있다. 지난해 9월 같은 동네에서 미군과 동거하던 이정숙(47)씨도 숨진지 며칠 뒤 사체가 유기된 채 발견되었지만, 미군쪽의 협조거부로 동거한 미군의 신병을 인도받지 못한 상태이다. 지난 1월 의정부 광적에서 칼로 14곳을 찔린 채 발견된 클럽 종업원 한아무개(18)씨의 경우도 수사 진척이 없다. 미군이 지문대조, 사진대조, 유전자감식 등을 통상 ‘피의자 인권’과 ‘자국민 보호’를 내세워 거부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서울 이태원 살인사건의 경우에는 범인의 행적이 기지 안팎의 여러 사람에게 노출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무관심과 냉대, 그렇게 죽어가야 하는 건가

(사진/60대 여성으로 미군을 상대하던 서씨의 옥탑 단칸방. 서씨는 이곳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뺏뻘’의 여성들은 요즘 대부분 잠을 못 이룬다. 서씨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닌 탓이다. 서씨는 이 동네의 마지막 ‘히빠리’였으나, 인근 동두천에는 서씨와 비슷한 처지의 나이든 매춘여성이 40∼50명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두레방 유영님 원장은 “수사도 수사이지만, 미군범죄는 재발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더이상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 정부는 미군 당국에 수사협조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고, 나이든 기지촌 여성을 보호할 특단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

60대의 기지촌 여성들은 대부분 전쟁통에 기지촌으로 흘러들어온 이들이다. 오랜 기간 미군을 상대해왔기에 몸과 마음이 망가져 있다. 주변에 자신을 감추고 살다보니, 생활보호대상자라로 나서기도 힘들고, 최소한의 혜택도 못받는 이들이 많다. 술이나 약에 취한 미군을 상대로 계속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서씨의 죽음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서씨와 ‘또다른 서씨들’이 50년 가까이 기지촌을 홀로 떠돌며 연명할 때, 우리 정부와 사회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정부의 무관심과 사회의 냉대 속에 병들어 죽거나, 살해당할 권리밖에 없는 것일까.

서씨의 유골은 부검 다음날인 3월14일, 벽제 화장터 인근 야산에 가루가 되어 뿌려졌다. 그는 결국 죽어서야 ‘뺏뻘’을 떠날 수 있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한겨레21 2000년 03월 30일 제3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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